실업일기(11)-스트레스에 대한 생각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안고 살았다. 어제 얘기했던 그 Career Statement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건 왜 생기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 스트레스는 딜레마 속에서 생긴다. 이를테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찌 되었든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하는 일흔 넘은 노인 양반의 마음을 생각해 볼때 나는 어찌 되었던 최선의 최선을 다해 이걸 써서 나의 길도 찾고, 또 그 분도 ‘아 이 새끼 그래도 도와준다니까 열심히 하네’ 라는 흡족한 마음을 가지시도록 해야만 하는데, 그러자니 또 이런 영작을 한다는 것이 7,8년 영어권 국가에 살았다고 해도 여전히 버거운 것은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 또 뭘 써도 마음에 안 들고, 거기에다가 나라는 사람 생겨먹은게 또 직업세계에 얽힌 이런 걸 써서 ‘아따 나 이런거 저런거 잘 한다니까’ 라고 말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고… 결국 종합적으로 볼 때 ‘아 #발 안하고 말아’ 도 택할 수 없고 ‘그래, 내 한 몸 불태워서 정말 명 문장을 만들어 지금 이 불황에서 적어도 1:1,000은 될법한 경쟁을 뚫고 취업해서 나중에 책이라도 써 팔아 먹어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자랑거리라도 만들어 놓으리!’ 도 잘 안되고, 그러니 스트레스는 쌓일 수 밖에. 하루 종일 이 스트레스를 안고 있으면서도 회피하며 다른 일들만 하다가, 거의 두 시간 반을 들여서 새로 쓴 것도 아니고 어제 썼던 것을 바탕으로 다시 다듬었다. 다 쓰고 나니 맨 처음 생각나는 건?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맥주… 실업자 되기 전에 포도주를 이것저것 좀 샀는데 이상하게도 실업자 되고 나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어느 정도는 아, 실업자에게 사치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 때문이겠고, 또 어느 정도는 그 신맛이 갑자기 싫어져서 그런 듯. 어떤 종류의 감정과 또 어떤 종류의 미각에 상관관계가 있나? 이를테면 스트레스 받을 때 초콜렛을 먹는다는 사람들이 있듯이 이런 감정에는 신 포도주는 먹기 싫어진다던가…
채 2주가 지나지 않았는데, 잠정적으로 운신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비공식적이지만 H-1b 비자 소유자의 실업 이후 주어진다는 60일이 되기 전에 일단 챙겨서 들어가겠노라고. 처음 며칠은 뭐 온갖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봤지만, 여기가 무슨 젖과 꿀이 흐르는 지상낙원도 아닌데 그 말도 안 되는 방법-그리고 돈도 물론-까지 써서 아둥바둥 머무르고 싶어하는 내가 싫어졌다. 나만 멀쩡하면 어디를 간다고 한들 밥 굶을까… 나약한 생각은 이제 접을 때도 되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그러므로 열흘 조금 지난 첫 번째 달에는 등록해 놓은 시험 보고 전업으로 구직활동하고, 다음 달에는 짐도 정리하고 뭐 가능하면 집도 내어놓고… 그렇게 생각하니 60일을 바로 넘겨 내 생일에 벌어지는 반쪽 마라톤은 어떻게 해야 되나, 갑자기 갈등이 생겼다. 신청도 다 해 놓았고, 언제라도 그 정도는 너끈히 뛰어줄 수 있는 상탠데… 뭐 생일 전에 들어가면 누구와 보내도 생일은 혼자 안 보내게 될테니, 또 나름 좋겠지만.
내일은 점심에 멘터를 만나기로 해서, 오늘 부랴부랴 몇 쪽이라도 뽑아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포트폴리오를 마무리했다. 80% 정도는 된 셈. 뭐 사실은 멘터를 만나서 포트폴리오를 보여준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는 없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그의 회사도 반으로 줄였다는데 뭐…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언제 또 다시 보게 될지 모르니, 인사라도 할 겸 만나는 것이다. 아, 내일은 나를 버린 회사에도 들러야 한다. 포트폴리오를 위한 이미지들을 준비해놓으셨다고 해서… 대체 얼마나 잘 준비해주셨을까 궁금하다. 목록을 만들어서 줬는데 반이라도 준비해놨을까?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도 전혀 하지 못한 언젠가 각종 잡비 지출한 것을 청구했는데, 그거 수표는 과연 주기나 할 것인지, 그것도 물어봐야 한다. 다 합치면 20불 정도 되나? 그게 어디야, 요즘 장도 회사 다닐 때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보는데.
# by bluexmas | 2009/02/09 13:37 | Life | 트랙백 | 덧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