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정보의 피라냐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지, 대학 시절에. 뭐 다른 사람들에겐 지루해서 인기가 없는데, 누군가는 변태라서 관심을 가진 과목이 있다고 치자. 예를 들면, 한국 건축사 같은. 교수는 학교 밖에서 들어온 시간 강산데 출석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당연히 지루함을 느끼는 학생들은 그 상황을 백분 활용하는거지. 어떻게? 뭘 물어봐… 다 알면서. 대학에선 4년 개근상 따위는 주지 않잖아. 그러니까 100% 개근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찾기도 쉽지 않지. 그래서 50명 짜리 반에 한 20명만 수업을 듣는다고 치자구. 나머지 30명이 수업을 아무리 안 들어왔더라도 시험은 봐야 학점이 나오니까, 중간과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누군가 수업을 정말 앉아서 들은 사람의 공책을 찾아 헤매지(배경 음악: 킬리만자로의 표범, 정도면 되겠어?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건 아니지만 아무 것도 안 한 주제에 학점 무위도식을 위해 남의 공책 따위를 찾아 헤매는 꼬라지가 꼭 하이에나 같잖아? 차라리 하이에나는 남들이 먹다 버린 썩은 거나 먹고 만족하지만 이 상황은 어째 그것보다 더 염치 없는 것 같은…). 그런 상황에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와서 공책을 복사할 수 없냐고 물어보지, 꽤나 당당하게, ‘우리 사이에…’ 로 발화해서. 우리 사이가 뭔지는 대체 알 수 없지만, 우리 사이까지 들먹이는데 어떻게 안 빌려줄 수가 있어? 싫다고 말했다간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버럭 낼텐데? 그래서 머뭇머뭇, 꺼내서 빌려주는거지. 그 머뭇거리는 분위기까지도 마음대로 못 내면서. 또 한 편으로는 ‘너만 봐라’ 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천하에 정말 재수없게 쪼잔한 인간으로 보일까봐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겨 주는거야. 그러면서 자신을 원망하는거지. ‘아, 얘가 우리 사이, 까지 들먹였는데 나는 왜 우리 사이에 이거 하나 시원하게 못 넘겨주는거야 대체.’ 그리고 그 날 밤에 혼자 자취방에서 깡소주 마시면서 자신의 쪼잔함을 책망하고(그러나 술에 취해 쓰러져 자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술은 커녕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이 없더라구! 앗, 이름이 뭐였더라? 동기 맞겠지?). 드디어 시험날, 아 이 과목은 남들 다 안 좋아했어도 나는 너무 좋아서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필기도 열심히 했으니 꼭 좋은 학점을 받을테야, 라는 70년대 집에서 남은 소 두 마리 가운데 더 밭 잘 가는 놈 팔아서 법대 간 시골 소년과 같이 촌스러운 두근 거림을 안고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어라? 수업에 거의 들어온 적 없는 나머지 30명 가운데 27명이 가지고 있는게 내 공책이잖아? 대체 몇 단계를 거쳐 복사가 되었는지, 어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건 종이 구겨진 것까지 다 복사가 되었는데 글씨 자체는 희미하기까지 한 거야. 이건 뭐 암웨이보다 더 빨리, 그리고 깊숙히 퍼지는 피라밋인거지. 게다가 대부분 그 공책이 누구에서부터 온 것인지조차도 몰라. 분명히 누구는 누군가 한 사람에게만 복사해줬는데, 그 누군가는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일까? 아, 한 사람씩 훑으면서 내 공책이라면 복사비 몇 푼 던져주고 빼앗아서 강의동 앞 마당에 쌓아놓고 진시황처럼 불태워 버리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교수님이 들어오시네. 아, 이 불편한 마음.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는 복사 공책을 가지고 있는 애들한테 지랄하면 뭐해, 그래봐야 ‘쪼잔한 인간 지 혼자 학점 잘 받으려고 그거 하나 못 나눠준다’ 고 배로 지랄할텐데. 그러고 보면 내가 정말 쪼잔한 인간인지도. 이게 지금 글 쓰는 사람 얘기냐고? 그게 뭐 중요한가? 알면 당신도 아니, 이 쪼잔한 인간… 그럴지 모르니까 상상에 맡기기로.

만약 이런 얘기를 듣고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이런 얘기도 있지(아니 뭐 아무런 생각 없어도 나는 상관 없지만-). 환장하게 지루한 무슨 건축계획, 그것도 그냥 건축계획도 아니고 60대의 은퇴한 명예교수가 세계 제 2차 대전 즈음의 자기 일본 대학 스승의 책-세상에 다다미 방 계획하는 법이 책에 떡하니 나왔다니까, 2000년에!-을 번역해서 가르치는, 그런 건축계획 과목의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시험 직전 시간에 누군가(그 누군가가 정말 누구였는지 여기에서 자세히 묘사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생략-)가 사람들 앞에 나와서 큰 소리로 외치는 거지, ‘누구 이 과목 시험 대비해서 요약해 놓은 사람 없어요? 아, 그게 있어야 공부를 하는데.’ 당신은 안 궁금할지 몰라도 나는 궁금하더라니까, 아니 본인은 왜 요약 같은 걸 못해서 남이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건지. 게다가 누군가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 놓은 걸, 그냥 자기가 가서 달라고 그러면 모든 사람이 흔쾌히 줄거라고 생각하는 저 말 속의 뉘앙스는 대체 또 뭐고. 가서 또 ‘우리 사이에-‘ 를 들먹일건가?

아마존 강에 사는 피라냐는 피냄새를 맡으면 미친 듯이 모여들어서는 뭐 단 몇 분 만에 그 피냄새의 원천을 뼈만 남긴채 뜯어먹어버린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꼭 1차 정보의 피라냐 같다니까. 거의 대부분 먼저 나서서 자기 생각이 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가, 누군가 무엇인가를 내놓으면 거기에 미친 듯이 달겨들어서는 해석하고 또 비평하고, 거기에 ‘리뷰’ 까지 해서는 2차 정보를 내어놓는거지. 안타깝게도 그런 과정에서 1차 정보는 완벽하게 뜯어먹혀져서, 2차 정보는 1차 정보의 뼈나 그 뼈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정도도 안 된다니까. 뭐가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오늘도 기다리는거지, 누군가 뭔가 먼저 내어놓을 때까지. 인내심이라는 인생의 3대 덕목(미안, 갑자기 3대 덕목을 가져다 붙이려니 나머지 두 가지가 무엇이어야 되는지  떠오르지가 않는데? 믿음, 소망, 인내심, 이라고 대충  얼버무리면 사랑이 화낼까? 그래도 사랑인데 사랑으로 넘어가 줄 것 같지는 않고? 에라 모르겠다-)의 딱지를 그런 잠복과정에 까지 붙여줄 수 있는지 나는 자신이 없지만, 거기 늘 ‘우리 사이에-‘ 를 들먹이며 남이 먼저 필기해 놓은 공책이나 시험을 위한 요약 따위를 늘 기다렸던 당신 얘기라면 들어줄테니까, 어디 한 번 얘기해봐요. 참, 지금 이 얘기는, 1차 정보도 아니고 그 1차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본인들만 믿는 2차 정보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사실은 3차 정보고, 당신이 이 3차 정보를 보고 뭔가 해석이며 비평, 또 ‘리뷰(당신이 블로거라면 ‘리뷰’ 를 해야 되는거, 알지? 특히나 메이저 블로거라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당신은 ‘웰메이드 리뷰’ 를 해야만 한다고. 그래야 블로그에 광고 배너 같은거 다는거야. ‘가외 수입 오백’ 이런거 부럽지 않아?)’ 를 하면 그건 사실 ‘4차 정보’ 나 될까 말까 하니까, 당신이 2차 정보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자부심 따위를 가지고 있다면 내 글을 읽고 반응 따위는 안 보여도 괜찮아. 대신 담배 피우면 꼭 꽁초는 쓰레기통에 버려주면 고맙고. 뭔가 크나큰 사회정의나 대의 명분 따위를 얘기하면서 담배 꽁초 아무데나 버리고, 신호등 안 지키고 그러면 좀 곤란하지 않겠어? 아니 뭐, 내가 무슨 절대 도덕의 상징처럼 안 그런다는게 아니라, 어기면 쪽팔리던데 당신도 그렇게 느끼는지 궁금할 뿐이지. 안 그런 것 같아보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낯두꺼움이 부러울 뿐이고.

정말이야.

 by bluexmas | 2009/01/28 11:45 |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starla at 2009/01/28 17:58 

가끔 bluexmas 님 비유는 정말 신기하단 말이에요. 피라냐라니!

후훗. 참신.

 Commented at 2009/01/29 08: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2/05 11:06 

starla님: 참신하다기 보다는 그냥 좀 비뚤어진거 아닐까요? 흐흐…

비공개님: 왜 블로그 접으시는지 안타까워요. 그래도 재미있었는데… 종종 찾아오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