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나오는 토요일
아니 뭐 정말 토가 나올 것 같은 날은 아니었고, 이러면 운Rhyme이 좀 맞나 싶어서…
어제 마신 맥주는 정말 배에 붙이고 있는 딱지처럼 깔끔한 맛이 일품이어서, 단숨에 비우고는 냉장고 있던 또 다른 콜로라도 산 에일까지 한 캔 더 마시고는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새로 나온 Underworld의 세 번째 편을 보러 갔는데, 케이트 베킨세일이 나오고 안 나오고를 떠나서 남들이 다 구리다고 하는 이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조차도 이 세 번째 편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아니 그래도 영환데 뭔가 줄거리의 흐름에 긴장감이 좀 있어야지… 아마 한 시간 이십 분짜리로 영화를 만든 이유 역시 자기들이 만들면서도 줄거리가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번 편은 지난 두 편의 prequal이기 때문에, 줄거리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벌써 그 전편들에서 울궈 먹었고 따라서 어떤 디테일을 제공하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었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을 이 영화에서는 작심하고 내다 버린 것처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Revolutionary Road를 버리면서까지 충성을 바쳐 본 영환데, 배신의 뒷통수를 맞은 느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서점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기분 좋게 집중해서 공부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소음제조녀 때문에 추진력을 잃어버리는 슬픈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으나 돌연히 나타나서는 건너편 탁자에 앉아 책을 보는데, 일단 코를 풀어 주변의 기선을 제압하고는, 책을 보면서는 계속해서 엄청나게 큰 소리로 기침을 해댔다. 세상에 이 코 푸는 소리가 정말 얼마나 컸던지, 나와 앞,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웃는 사태가…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으면서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두 번 코를 풀어 기선을 제압하고, 그 뒤로 20분 간격으로 또 두 번씩 코를 풀면서 그 사이사이에는 계속해서 기침을 해서, 나는 어느 순간 보고 있던 교재를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가, 여기가 도서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제했다.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허우대 멀쩡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와서 데려가던데, 떠나기 직전에도 어디 먼 길을 휴지 없이 가는지, 냅킨으로 코를 세 번(마지막이라 한 번 더 풀어야 했던 듯, 정말 먼 길을 가는지…)이나 풀고 길을 나서는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듣는 내 고막도 과연 저 소음에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본인의 고막은 정말 어떨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내가 저 남자친구가 아니라서 어찌나 다행스럽던지. 차를 타고 둘이서 가면 계속해서 코 저렇게 세게 풀고 미친 듯이 기침하고…아 나라면 운전하다 문 열고 그냥 뛰어내릴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내 옆 탁자에 앉은 흑인 커플과 나는 그 여자가 사라질 때까지 참았다가 ‘아니 어떻게 저렇게 미친 듯이 코를 풀 수가 있대, 아무래도 서점 아닌 병원에 갔어야 하는게 아닐까?…’ 라고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원래 주말에는 영어를 절대 안 쓰는게 나의 생활 습관이며 신조인데, 정말 너무 미쳐버릴 것 같은 소음에 결계를 아니 풀 수가 없었다. 간간히 커피가게에서 음료수를 만드느라 믹서를 돌렸는데, 그 소리가 속삭임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진도를 뽑고 서점을 나와서는 사람 구경이나 할까 쇼핑몰에 잠깐 들렀는데 온갖 비싼 주방용품을 팔아서 옛날에 블로그에 올렸던 아이스크림 기계 말고는 아무 것도 사 본 적이 없는, 그러나 갈 때마다 꼭꼭 들르는 Willam & Sonoma에서 할인하는 핫윙 소스와 너무 커서 약간 징그러워 보이는 콩을 샀다. 소스는 12불인가 하는 걸 3불에 팔았고, 콩은 무려 15불이나 하는 걸 1불, 아니 99센트에. 콩이 소스보다 더 비싸다니 이해가 잘 안 갔다. 누구 말마따나 콩이 금테를 둘렀는지… 어쨌든 그렇게 사람 구경을 잠시 하고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마실 포도주를 따 놓고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려가서 저녁이나 만들어 먹어야…
# by bluexmas | 2009/01/25 08:34 | Life | 트랙백 | 덧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