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금요일

다른 금요일이라면, 운동이 끝나갈 때 쯤에는 휴일의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마음이 가벼워지게 마련인데 오늘은 별로… 끝나고 또 뭔가를 해야 되기 때문에 운동을 하면서도 마음이 계속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기분이었다. 뭘로 가득 차 있으면 분위기에 맞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토사물이 좋을 것 같구나. 그래, 마음이 계속 토사물로 가득 차 있는 기분이었다. 역시 나는 토사물을 사랑하는 듯.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냥 남들이 가는 길을 거슬러 가는 건 다 좋아. 그래서 음식의 길을 거슬러 가는 토사물을 감히 사랑하는거지 나는.

운동하는 날이면 가는 학교-과 도서관(과 건물에 도서관이 따로 있다. 책은 가장 어린 애들이 나랑 동갑정도? 책 곰팡내가 좀…)에서 딱 두 시간만 공부하기로 하고 향했는데, 벌써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에는 일찍 닫는다고 들은 것도 같았다. 학교 다녔을 때도 금요일이면 스튜디오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기 바빴으니 이 시간까지 도서관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가 있나. 약간 난감해져서 또 차를 몰고 근처 서점에 가야 되나, 생각을 하는데 도서관이 있는 1층 로비 맞은 편의 커피매대에서 식탁이랑 의자를 안 치우고 내버려 둔 게 있어서 그냥 거기 앉아 그야말로 꾸역꾸역 공부를 했다. 운동도 했겠다, 저녁이라고 빵쪼가리도 도서관으로 운전해 오면서 먹었겠다… 졸음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는데 그래도 진도는 뽑아야 하니까 정말 비몽사몽, 뭘 했는지도 모르게 간신히 두 시간을 채웠는데, 갑자기 바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기 싫어져서 발을 끊은지가 몇 달이더라? 옛날 글을 뒤지면 나오는 것 같은데 귀찮으니까 접고, 하여간 집에도 맥주가 있어서 시원하게 딱 한 캔만 마시고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루 종일 했었는데 갑자기 사람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에 가서 한 병만 마시고 집에 가자, 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는데 하필 그 시간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가장 구린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구리도록 흔해 빠진 목소리로 헤이 주드를 부르고 있는데다가 밖에서 들여다 보니 바는 완전히 꽉 차 있었고 시끌벅쩍했으며 예전에 일하던 아줌마 바텐더 둘이 그대로 있었다. 또 나를 보면 반갑다고 막 인사를 할텐데 나는 오늘 껍데기만 인사를 할 것 같으니 이를 어쩐다? 생각하다가 발걸음을 그대로 옮겨 자리를 떴다. 사람 구경도 3초 하고 나니 어째 다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 한 병에 5불, 세금에 팁이면 7불 가까이 줘야 되니까, 그냥 잘 가는 술 가게에 들러 꿩 대신 닭 격으로 콜로라도 어느 동네에서 만들었다는 댓병 에일을 한 병 비슷한 가격에 사가지고 왔다. 말하자면 뭐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다는… 종류가 꽤 많았는데 딱지가 예쁜게 내 취향이라서 이걸로 골랐다. 동네양조장에서 초콜렛을 섞어 빚은 맥주도 봤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어쨌든 이제 글 다 썼으니 내려가서 맥주 사진 찍어서 붙이고, 마시다가 쓰러져 자야겠다. 냉장고에 지난 주에 만들어 먹고 남은 꿀땅콩과 아몬드가 남아 있다. 맥주 사진을 찍고 보니 거품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어째 보기가 별로 안 좋구나. 게다가 빨리 마시고 싶어서 대강 찍었더니 기울었네.

참, 잔뜩 비아냥거리는 글을 10분 만에 미친 듯이 열과 성을 다해 쓰고는 올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by bluexmas | 2009/01/24 14:23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turtle at 2009/01/24 15:15 

하하 이거 정말 귀여운 상표네요. 초콜렛을 섞어서 빚은 맥주는 … 초콜렛도 맥주도 좋지만 두 가지를 섞은 건 왠지 좀 꺼림직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요. ^^;

 Commented by starla at 2009/01/24 15:56 

꿀땅콩을 만드셨다고요? +_+

 Commented at 2009/01/24 16: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나녹 at 2009/01/24 21:08 

본적이 없는 거다싶었더니 지방주로군요. 깝데기 정말 이쁘다능 ㅋ 브루클린라거도 겨울한정으로 초코맛이 나오는데 아직 못먹어봤어요. 낱병으로 파는 곳을 못찾아서…;; 식스팩사기엔 부담되고 말이죠-_-

 Commented at 2009/01/25 02: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1/25 16:22 

turtle님: 그렇죠? 맥주 딱지들이 또 대부분 술이라 무슨 악마그림 이런 것들만 그러져 있는데 그게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꼭 딱지처럼 깔끔한 맛이었어요. 그리고 초콜렛 맛 맥주는, Ale이나 Stout 같은 경우는 그 쓴 맛이 Lager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 뒷맛에 초콜렛 향을 첨가하면 또 그게 잘 어울리나봐요. 다음 번에 시도해보고 어떤지 알려드릴께요.

starla님: 네! 벌한테 뽕을 먹여서 땅콩과 교접을 하거나 꿀을 모아서 땅콩에 먹이도록 해서 꿀땅콩…은 아니구요 -_-;;; 꿀이랑 버터 따위를 섞어서 끓인 다음에 땅콩에 버무려서 오븐에 굽는 그런 레시피였어요. 근데 맛이 땅콩에 깊이 배이지 않아서 뭔가 좀 보충이 필요할 것 같더라구요.

비공개 1님: 아 사실 저는 굉장히 비뚤어진 인간이랍니다. 기대하시는 것보다 더 많이 비뚤어질지도 모르는데 괜찮을까 모르겠어요. 요즘 많이 바쁘세요? 허리는 괜찮으신지…

나녹님: 또 왜 지방주들도 요즘은 많이 보급되잖아요. 부르클린 라거도 아틀란타에서 마실 수 있는 것처럼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틀란타 맥주 가운데에는 Sweet Water라고 에일이 가장 많이 알려져있고 괜찮은데 아마 거기에서도 드실 수 있을걸요?

비공개 2님: 그게 그러니까 그 바에 고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사람 많이 오는 시간에 부르는 남자가 정말 목소리도 구리고 모든게 질리도록 구린데 노래마저 헤이 주드라서 술맛이 다 떨어지는…’이봐 주드, 미안해 이렇게노래를 불러 너를 욕되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