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

6년 전 유럽에 갔을 때, 친했던 미국 애들은 나에게 한국 욕 Korean Four Letter Word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썼다. 간간히외국 애들한테 장난으로든 진심으로든 우리말 욕을 가르쳐줬다가 어이없는 상황에 엮였다는 얘기를 들었던지라,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친구들은 불공평하다고 두털거렸다(It’s not fair). 너는 한국말 욕 영어 욕 다 하면서, 우리한테 안 가르쳐 주는 게 어디있냐고. 하여간 나의 굳건한 태도에 애들은 곧 한국말 욕을 배우고 싶은 욕구를 접고, 다른 단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가장 처음에 꺼낸 단어가 ‘breakfast’ 이었다. 그게 아침을 먹던 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 왜 아침밥이 맨 처음에 알고 싶은 단어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는 breakfast는 한국말로 ‘아침밥’, 발음은 ‘achimbap(혹은 achimbab)’ 과 비슷한데, ‘아침’ 은 morning, ‘밥’은 ‘meal’로 단어는 ‘morning meal’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얘기해줬더니, 한참을 개구리가 개굴개굴 거리듯 ‘아침바브-아침바브-‘를 입에 달고 다녔었다. 최근 언젠가도 술 마시다가 또 그때 얘기가 나와서 아침바브- 아침바브-를 오랫만에… 어쨌든 건강진단 같은 것 때문에 걸러야 하는 때가 아니면 아침을 거르는 일은 절대 없다. 뭐라도 어떻게든 먹는다.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는 냉장고에 있는 뭐든 꺼내 녹혀서 운전하고 내려가면서 먹는데(아니 뭐 그렇다고 생대구를 녹혀서 우적우적 먹으며 내려가는 건 아니고 -_-;;;;), 벨트를 매고 음식을 먹으면 잘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운전하면서는 안 먹으려고 하지만. 

아침을 거르지 않는 습관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부모님으로부터 나왔다. 아침을 안 먹으면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아, 학교 가기 싫은 날 아침 안 먹겠다고 억지를 좀 부려봤어야 되나… 라는 생각도 지금은 가끔 하는데 하여간 그 때는 아침을 안 먹는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6,7년 정도 살았던 아파트는 사서 내부수리를 다시 했던 것이었는데, 그 때 그리 넓지는 않은 부엌에 당시 유행이었던 좁고 긴 식탁(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까먹었다. 전공자가 이래도 되나?-_-;;) 을 달아서 식구들은 거의 언제나 그 좁은 식탁에서 싫어도 오붓한 척 같이 밥을 먹었는데, 아침이면 어머니는 빈도시락통을 산처럼 쌓아놓고 거의 매일 새로 반찬 두세가지를 만들어 아침을 먹이고 도시락을 싸주셨다. 그러니까 그걸 생각해서라도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요즘이야 저녁 먹고 나서 다음날 아침까지 정말 아무 것도 먹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배가 너무 고프니까, 아침을 거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반은 농담으로 회사 사람들한테 하는 얘기지만, 아침을 안 먹으면 배가 너무 고파서 가속페달을 밟을 수가 없으니까.

아침은, 너무나도 바쁜 시간이다. 도시락은 전날 밤 자기 전에 싸 놓기는 하지만, 그걸 가방에 다 챙기고 출근 준비를 하려면 언제나 반쯤 뛰어다니게 되고, 아침도 먹기는 먹되 느긋하게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 아침은 통밀빵에 우유, 바나나 따위로 먹게 되는데, 땅콩버터 샌드위치 같은 걸 만들어서 한 손으로는 먹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도시락을 챙기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을 아낀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한 시간 안으로 차를 타고 집을 나서는게 목표라서, 언제나 정신이 없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한답시고 점심, 저녁을 다 밖에서 대강대강 먹게 되어서 아침이라도 집에서 밥을 식탁에 차려 앉아서 먹고 나간다. 뭐 그렇다고 엄청난 걸 차리거나 있는 반찬 그릇을 다 꺼내놓을 시간은 없어서 그냥 이렇게 간단하다. 오늘 아침은 어제 대강 끓인, 시들어 가는 시금치를 넣고 끓인 된장국에, 밤새 타이머를 맞춰 놓아서 아침에 새로 지어진 현미밥, 주말에 담근 깍두기, 벌써 만든지 일주일은 지나서 맛이 그저 그런 꽈리고추 멸치 볶음, 그리고 언제나 단백질을 먹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만든 계란 부침… 뭐 이정도였다. 주중엔 이렇게 먹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주말에 그렇게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는 것이다. 뭐 매일매일 그렇게 먹고  사는게 아니라.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블루베리로 무려 디저트까지 먹었구나, 장하다.

 by bluexmas | 2009/01/21 15:25 | Taste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by Dia♪ at 2009/01/21 16:37 

아 저도 집에서 아침은 꼭 먹어야한다고 배우고 먹고 자라서

요즈음 먹었다 걸렀다 하는 일상은 슬픕니다 ㅠㅠ

매번 눈팅만 하다가 저 아침 메뉴가 웬지 참 정겨워서 댓글 달아봤어요^^)/~

잘 챙겨드시고 늘 건강하시길!

 Commented at 2009/01/22 09: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1/23 15:06 

Dia♪님: 반갑습니다. 사실은 정겹다기 보다 궁상맞은 메뉴들이 더 많아요. 사실 이번 주에는 가게에서 광어 회 뜨고 남은 뼈 파는 걸 사다가 찌개를 끓여서 아침에 먹… 광어 먹을 돈은 없었거든요, 흐흑 T_T

비공개님: 저도 라면 먹은 적 몇 번 있어요. 중학교 때요. 다시는 먹고 싶지 않지만… 할루미라는 치즈가 있는데, 그 치즈는 안 녹는다고 하더라구요. 바나나빵 같은 건 구워잘라서 랩으로 산 다음 냉동실에 넣어두면 급할때 아침으로 정말 좋아요. 전자렌지에서 30초면 다시 따뜻해지구요, 맛이나 영양도 괜찮아요. 제 블로그 어딘가에 레시피가 있을거에요.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9/01/26 10:28 

저도 평생 아침걸러본 게 음…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 동생하고 엄마는 아침먹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일 것 같지만 ^^;; 아 근데 저도 광어(뼈) 매운탕 먹고싶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1/27 16:40 

저도 눈만 뜨면 배가 고파서요. 지난 번에 끓인 건 사실 탕이라기 보다는 지리였는데, 광어뼈를 끓여서 국물을 낸 다음에 냉동 대구살을 넣은 것이었거든요. 제가 생선찌개 같은 건 거의 끓이지를 않아서 맛이 별로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