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
아버지의 책이 나왔다. 관련 기사는 여기. 다른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다고, 아버지는 내가 축하드린다고 보낸 메일의 답장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직접 말씀을 드리려고 어제 전화를 했는데 계시지 않아서 드린 메일이었다. 메일을 워낙 자주 보내시니까 그 메일들 속에 진척과정을 얘기하시곤 했는데 워낙 불효자인지로 한 귀로 듣고 또 다른 귀로 흘리곤 해서, 언제 책이 나온다고 들었는지 사실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책이 나왔다는 얘기도 며칠 전에 아버지가 보내셨던 메일을 보고 알았고 하루 이틀인가 지나서야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아버지께는 이 책이 첫 번째가 아니다. 정말 불효자스럽게 몇 번째 책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적어도 두 권인가를 내셨는데 그 책들은 모두 아버지의 전공 지식과 생활 과학 등등이 적절히 어우러진, 기술과 교양 서적의 경계선 쯤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이렇게 ‘알고 있다’ 라고 쓰는 이유는 사실 나는 아버지의 책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불효자다. 사실 나는 정말 내가 지금 이렇게 해 왔던 것보다 아버지를 조금 더 인정해드려야 한다. 이렇게 쓴다고 해서 내가 뭐 아버지가 지금까지 이뤄오신 것을 무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생각하기에 나는 아버지를 나의 가족인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책들이 나오면 성의를 기울여서 읽고 또 느낀 점도 말씀을 드리고 그래야 되는데, 난 그런 부분에서 너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요즘은 정말 아버지께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내가 아버지에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뭐 그건 사실 아버지라는 특정인과 나와의 거리라기 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남자들과 나와의 거리감일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서른 몇 살이 되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나와 다른 남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리감,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형적인 한국 남자들과 나와의 거리, 그리고 내가 느끼는 거리감, 마치 내가 무슨 변종이거나 소수인 것처럼 스스로를 여기게 만드는 그런 거리감. 어쩌면 그런 종류의 거리감은 사실 오래 전에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와 이름 두 자를 나눠 쓰는 그 분과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서 비롯된 어떤 감정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남자들과 나와의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의 기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늘 느껴왔다. 나는 그 두 사람들과 닮기 보다는 어머니를 닮은 사람이었고, 언제나 유대감은 희박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져왔던 father figure나 brother figure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돌아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마치 그런 것들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냥 내 잠재의식 속에서 가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어떤 행동이나 감정의 덩어리, 아니면 그 외곽선과 같은 것들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것들을 보면서 그 반대의 길로만 걸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지닌 채로 살았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나는 어느 새 바다 건너편에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네, 라는 어떤 처량맞은 70년대 유행가 가사와 같은 지금의 이 상황. 따지고 보면 혼자가 아닌데 언제나 혼자였던 것 같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느낌.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개인사라는 깊은 연못의 진흙바닥. 아주 큰 돌을 던지지 않고서는 탁하게 만들 수 없는 아주 깊고 또 깊은…거기 당신, 그 돌 내려 놓는 게 좋을거에요. 그런 걸로 나를 흔들어 놓으려고 하면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어질지도 몰라. 바로 그 돌을 빼앗아서 머리를 짓이겨 버릴거야. 건드리지 말라구.
………
어쨌든, 그건 그거고 지금 이렇게까지 흘러온 가족의 삶, 아버지의 삶, 그리고 나의 삶을 마치 남의 것인양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조금 더 신경을 많이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뭐 불과 7,8 년 전, 내가 막 미국에 왔을 때 아버지가 평생 일하셨던 직장에서 은퇴하시면서 겪었던 어려움 등등을 생각해 보면, 자식으로써 건방지게 아버지한테 그렇게 잘 지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마음이 든다. 아버지는 아마 오늘도 열 시나 열 한 시쯤에 어머니랑 안방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시다가 잠드시고서는 새벽 두서너시쯤에 깨어서 뭔가를 또 쓰시다가 나한테 메일을 보내시겠지. 그 바닥에 있는 아들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이 따위 건물은 왜 디자인 하냐고 코웃음치던, 바로 그런 건물의 사진들이 ‘세상의 아름다운 건축물들’ 의 제목을 달고 담겨 있는 그런 메일이거나, 사실은 아직도 읽어보지 않은 워렌 버핏의 얘기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일상이 담겨 있는, 내가 이곳의 오후 두서너시쯤 일이 지루해져 확인할때마다 메일함 속에 담겨있곤 하는 그런 메일. 꼬박꼬박 답장을 해 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말 지어내는데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인간이 대체 왜 그렇게 할 말이 없는지, 매일매일 네, 아버지 저 잘 지내요, 라고만 쓸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망설이고만 있다, 나는. 알고 보면 매일 그렇게만 써도 아버지는 그저 아들이 보낸 메일이라고 좋아하실 것 같은데, 이렇게 별 볼일 없이 바다 건너에서 도망쳐 살고 있는 아들인데도.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뭔가 좀 더 해야만 될 것 같은데 시간에 쫓기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대체 뭘까.
# by bluexmas | 2009/01/20 11:23 | Lif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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