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묵은 기억의 흔적
사실 올해를 어떤 잘 나가는 분의 블로깅 소재라는 ‘디지탈 라이프 스타일(한글로 쓰니까 좀 어색한 느낌인데?)’의 원년으로 삼으려는 계획 따위가 있었다. 사람들이 늘 전화만 아닌 다른 용도로만 쓴다고 놀려대는 아이폰을 보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모든 기록을 거기에 해서 별 것 없기는 하지만 일정관리 따위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라고 생각했다가, 이 촌스럽고 구닥다리인 인간이 뭔가 끄적대고 싶은 욕망을 도저히 버릴 수 없다는 걸 알고 두꺼운 몰스킨 다이어리를 샀다. 계속 아이폰을 쓰겠지만, 아날로그 백업 정도라고나 할까. 너무 늦게 이걸 사겠다고 마음 먹었던 탓에, 좀 비싼 대가를 치루었다. 가을인가부터 이 다이어리가 서점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할인 쿠폰 따위로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던 것을 계속 망설이기만 하다가, 새해가 되고 사려드니까 반값으로까지 팔다가 다 나가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에서 제값 다 주고 샀는데,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거지.
몰스킨 다이어리를 쓰는 건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2005년과 6년인가에도 썼었다. 사실은 눈먼 복지가가 던져주고 사라진, 비싸디 비싼 다이어리 같은 것도 몇 개 있어서 그걸 좀 뽀대나게 써볼까, 여러 해 시도를 해 봤는데 나 같이 세련되지 못한 인간은 도저히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년을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했다. 그게 뭔지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서 펼쳐놓고 쓸 때 좀 있어 보이는 걸 빼 놓고는, 1/20 가격인 몰스킨 다이어리따위 보다 쓰기에 훨씬 불편했다. 역시 뽀대나려면 불편한 것도 감수해야 되는 모양이다. 어쨌든 더 이상은 불편을 감수하고 써 보겠다는 멍청한 시도 따위는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처리가 곤란해졌다. 아예 쓰지도 않은 새 것 조차 있는데.
어쨌든, 쌓아놓고 사진을 찍다가 옛날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옛날이라야 뭐 2005년 하고 6년이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일기 따위는 쓰는 인간이 아니었는데(나중에 들춰보면 쪽팔려서), 이 때는 여기에다가 뭔가 끄적거렸던 모양이다. 2005년…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는데 기억의 탯줄 따위에 칭칭 감겨서 숨막혀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미숙아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마음의 평화 따위를 대체 얼마나 원했으면 저렇게 써 놨을까나.
비교적 최근에 블로그에 썼던 시계 맞춰주는 남자에 대한 글의 기본 생각은 사실 이때 부터 가지고 있었던 듯.
영화 콘스탄틴,얼마나 재미 없었으면.
영화나 콘서트를 보고 오면 표를 저렇게 붙여놓곤 했다. 올해도 그렇게 해야지.
12월 15일 아침에 비왔나보네.
뉴욕 여행 준비했던 기록. 도착한 날 밤에 혼자 밖에 나가서 술을 너무 많이 쳐 먹고서는 그 다음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토한,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돼서.
한 때는 아무도 안 보는 공짜 신문 따위의 별자리 운세를 오려서 붙여놓기도 했었다. Labor of love 따위는 기울일 대상도 필요도 없었는데 밑줄은 대체 왜 쳐 놨었던 걸까.
끝.
# by bluexmas | 2009/01/18 22:20 | Life | 트랙백 | 덧글(5)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근데 저 LV 다이어리에 박힌 캐릭터는 혹시 땡땡?
땡땡이 들고 다니는 여행가방이 LV이었단 말이야;;; ㅠ_ㅠ
비공개 2님: 하하 알고 보면 제가 과격하게 말하기로 소문나서…욕쟁이 설렁탕집이나 빵집 차리는게 은퇴 이후의 꿈이랍니다^^
starla: 파란 펜글씨는 약간 변태스럽죠… 까만데 파란 글씨는 괜찮은데. 저게 무슨 한정판이라도 들은 것 같아요, 몇 년전에. 땡땡이가 땡땡이쳐서 만화책에는 안 나오고 LV에 몸파는 뭐 그런 줄거리라고나 할까요?
모조님: 저게 밴드 챔피언스 스티컨데 언제 생겼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옛날옛날에 백스테이지에서 공연하던 시절이었나… 소심해서 저런 것도 잘 안 붙이고 그냥 가지고 있다가 잊어버리고 그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