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빵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살았던 도시의 이름을 딴, 수용소같은 교실과 미워하는 누군가를 슬쩍 빠뜨려도 아무도 찾지 못할, 똥으로 가득찬 블랙홀 같은 푸세식 화장실이 돋보이는 학교였다. 각 학년 당 여덟 학급이 있었는데, 나는 6반에 배치되었다. 원래 담임을 맡았어야 할 과학담당 여선생-애들을 하도 잘 때려서 그랬는지, 본인이 구라를 쳐서 그랬는지 공수부대 출신이라는 헛소문이 돌았던-이 출산을 위해 학교를 떠나 있는 사이 총각이었던 체육선생이 임시로 담임을 맡아서는, 반배치고사에서 1등을 한 학생에게 임시로 반장을 맡긴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게 나였다.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나, 이제 학생들도 서로를 다 알았을테니 진짜 반장을 뽑겠노라고, 그는 저녁 종례 시간이었던가, 아니면 학급회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체육담당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총각이어서 그랬는지. 나름 호쾌한 구석이 있어서, 자원해서 반장을 맡아 책임을 지고 학급을 이끌어 갈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손을 들어보라고 얘기했다. 88년의 우리나라에서 갓 중학교에 들어간 애들이 당연히 그러했듯이,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가운데 단 한 명의 아이가 손을 정말 번쩍, 들었다. 김 아무개-이름은 아직도 기억이 나지만 뭐 그것까지 들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였다. 선생님 제가 한 번… 아이들에게 정말 호쾌하게 먼저 자원할 사람을 찾던 임시담임은 말했다.

“그래? 그런데 아버님은 뭘 하시지?”

아버지? 아버지가 뭘 하는게 저 아이가 반장을 하는 것과 과연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애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나에게 이 반장자리를 빼앗기면 안된다는 두려움 따위 같은게 있었을까? 2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빵 장사하시는데요.”

“뭘 하신다고?”

“밤빵 장사요.”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밤빵이라는건 붕어빵처럼 풀 같이 묽은 밀가루 반죽을 틀에 넣고 불에 굽는, 길거리 음식이었다. 밤톨같이 생긴 빵의 안에는 밤이 아니라 강남콩 앙금이 들어있었다. 붕어빵에도 붕어가 없듯이 밤빵에도 밤이 없는..?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가족들이 외식을 하면 꼭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그걸 한 봉지씩 사서 나눠먹곤 했으니까. 얼핏 보아도 팥 앙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젠가 어머니가 물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저씨, 이 속은 뭘로 만드는 거에요? 그때 그게 강남콩 앙금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연한 회색이었다. 어쩌면 그때 그걸 대답해 준 사람이 그, 손을 번쩍 든 김 아무개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는 노점상이었던 것이다.

“…그래?”

호쾌한 체육담당 임시담임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밤빵을 판다는 얘기를 듣고는 갑자기 주춤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더니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결정하자는 얘기로 결론을 맺고는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채 종례인지 학급회의를 끝냈다. 그리고는 일주일인가 얼마가 더 지나서는 똑같은 시간에, 내가 지금까지 반장 노릇을 잘 해 왔으므로 그냥 나를 정식으로 반장자리에 앉히는게 어떠냐고,제안을 닮은 통보를 내리고는, 다들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학기였는지, 아니면 그 학년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반장 자리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때 내가, 본의 아니게 연루된 상황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황 만큼은 정말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아버지 뭐 하시니? 밤빵 장사하시는데요? 뭐라고? 밤빵… 정말 그 체육선생에게 김 아무개의 아버지가 밤빵을 판다는 사실이 그 나머지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었을까? 그 아이의 기분은 과연 어땠었을까? 그 아이는 혹시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을까? 요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김 아무개의 아버지가 밤빵이 아닌 오뎅을 팔았다면 임시담임은 그를 반장으로 임명했을까? 아니, 같은 밤빵을 파는데 노점이 아닌 지붕이 있는 가게에서 팔았다면?

그러고 보니, 그 다음인가 다음다음 해에 그 김 아무개가 시내 어딘가의 길거리에서 아버지를 도와 밤빵을 굽는 걸 보았던 것도 같다. 그때쯤엔 우리 가족도 더 이상 밤빵을 즐겨 먹지 않게 되었다.

 by bluexmas | 2009/01/17 13:38 |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