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ewell Cheesecake
싸가지 없어서 본받고 싶은 사람도 또 존경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내가 존경한다고, 0.1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분인 우리 스튜디오의 부사장님이 회사를 떠나신다. 그래서 오늘 potluck을 했는데, 디저트로 치즈케잌을 구웠다. 사실 새해를 맞으면서 마음 먹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회사에 뭔가 만들어 가거나, 잘해줘도 그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해주지 말자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누구는 잘 해주고 또 누구는 그렇게 안 해주고 이런게 싫어서 나름 공들여서 해가면, 꼭 잘 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잔소리 해대는 경우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또 누군가는 이렇게 뭔가 자기가 받는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내가 무슨 회사 일 못해서 이딴 걸로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고… 그러나 이런 자리라면, 또 그 분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월요일 밤 열 한 시엔가 집에 돌아와서는 케잌을 구웠다. 역시 어떤 자리냐, 또 누구를 위해서 만드냐에 따라서 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마음을 담아서, 라고 말하면 약간 구라겠지만 그래도 잘 만들어야지, 잘 만들어야지 생각을 했더니 지금까지 만들었던 치즈케잌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운 녀석으로 구워졌다. 작년 4월인가 누구의 생일에 구웠을 때, 속이 완전히 익지 않았던 게 기억나서, 처음 화씨 500도에서 10분 구워 겉을 익히고 200도로 낮춰 한 시간 반을 굽는데, 시간이 다 된 후 오븐을 끄고 아침까지 그대로 놓아둔 뒤, 꼬박 하루를 냉장고에서 굳혔더니 질감이 괜찮았다. 가게에서 파는 치즈케잌에 뭘 넣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치즈케잌들이 딱딱한 반면, 이 녀석은 굉장히 가볍고 부들부들했다. 뭔가 위에 얹으면 더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을 것 같아서, 생딸기를 설탕에 30분 정도 재워둔 뒤 추수감사절에 쓰고 남은 크랜베리소스(물론 자작, 크렌베리+설탕+계피가루를 끓인 뒤 핸드믹서로 갈았다)를 끓여서 섞은 뒤 하루 밤 묵혀 얹었다. 원래 레시피에는 잼을 쓰도록 되어 있는데, 그러면 더 윤기가 나서 보기 좋았을 듯.
어쨌든 부사장님을 포함한 사람들이 다들 잘 먹었다니 그저 나는 기쁠 뿐. 어두운 실내에서 찍어서 사진은 그저 그렇다. 이해-뭐에 대한?-를 돕기 위한 단면 사진도 추가.
(예정대로 사진 폭파)
사실은 참 발랄하게 사는 30대 중반인데 또 누군가는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오장육부가 가득찬 염세주의자로 보기도 해서, 가끔 이렇게 발랄한 일상의 조각을 보여주는 사진도 올려줘야… 알고 보면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니까요. 한 달에 두 번씩, 월급 나오는 목요일 날 저녁에만 조촐하게 삼겹살 구워먹는. 가끔 귀찮으면 파무침은 건너뛰구요, 상추보다는 깻잎을 더 좋아해요. 장래 희망은 당연히 이글루스 100대 블로거. 사실은 작년까지만 해도 그저 막연하게 ‘메이저 블로거’, ‘파워 블로거’ 가 장래희망이었는데, 좀더 구체적인 희망을 가져야 장래에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요. 그래서 나의 장래 희망은, 이글루스 100대 블로거^^
# by bluexmas | 2009/01/16 12:26 | Taste | 트랙백 | 덧글(8)
비공개 덧글입니다.
저도 오늘 제 보스님의 은덕을 다시 한번 느낄 일이 있었는데…누구와 함꼐 일하느냐, 같이 일하는 사람을 존경할 수 있는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매일매일 온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저도 저런 마음으로 쿠키 구운 적 있어서 기분 알 것 같아요.
맛있게 드시는 모습 보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ㅅ//
장래 희망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도록 전 댓글을 열심히 달겠습니다..ㅎ
비공개 덧글입니다.
intermezzo님: 모든 것은 다 어떤 사람인 것이냐, 로 압축되는 것이겠죠, 일이 아니구요.
clair님: 멋지긴요 뭐 부엌이 그냥 밀가루 뭐 이런 걸로 범벅에 설겆이는 넘쳐나고 지저분하죠. 이젠 사랑을 위해 오븐을 돌려야 할 때가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T_T
Amelie님: 님께 귀엽다는 소리를 듣기엔 제가 좀 많이 늙었어요 T_T 덧글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주인이 워낙 빈정거려서 덧글이 다 말라죽었어요.
비공개 2님: 아하, 걱정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밸리로 글 안 보낸지가 어언 몇 개월인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계획이 없답니다…
케익의 유혹이 너무 강렬해 잠시 모니터를 핥을 뻔하기도…다음엔 늦은 밤엔 읽기 금지 태그라도 덧붙여 주세요. 그나저나 이런 맛난 음식들 섭취하시면서 앙상한 볼 유지하시는 비결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