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이는 일

월 말에 리시버를 도둑 맞은 뒤 보안 장비를 설치하려고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설치하려고 점 찍은 업체가 마침 친구네가 쓰는 업체였다. 이왕이면 물어보고 설치하려고 체육관에서 만났을 때 얘기를 했더니, 마침 추천 referral 제도가 있을 테니까 자기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우리나라는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이런 계약을 맺는 업종에 추천 제도가 많아서, 누군가의 소개로 찾았다고 얘기하면 계약이 성사된 다음 추천해준 사람에게 얼마의 사례를 지급한다. 가장 흔한 경우가 아파트에 세를 들게 되었을 때, 계약서에 추천해 준 사람 이름을 적어서 내면 몇 주 지나서 돈이 그 사람에게로 가고, 이런 경우 두 사람이 반씩 나누거나 아예 계약을 하는 사람에게 다 주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아파트를 구했을 때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이름을 추천자로 올리고 나중에 그 분이 돈을 다 주셨다. 나는 그냥 초콜렛 한 상자 사서 드리고(좀 좋은 걸로 사드릴 것을 8년 지났는데도 약간 죄송스러운 마음이-_–;;;)…

하여간, 보통 이런 식으로 추천자 이름을 올려서 돈을 나눠 가져왔기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를 추천자로 엮어서 돈을 만들면 당연히 나눠서 가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친구에게 네 이름을 추천자로 올릴 테니 연락을 그쪽에 하라고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연락은 했는데 (물론 아직 생기지도 않은 돈-무려 500불-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이런 경우에 어떤 얘기도 하기 싫어서 그냥 알아서 하겠거니, 라고 생각하고 놓아두곤 했는데 그게 늘 좋은 것만 같지는 않아서, 나를  추천했다는 메일의 답장에다가 ‘그럼 돈은 반땅하는거지?’ 라고 한 줄 덧붙여 보냈으나 역시 묵묵무답… 오늘 저녁에 체육관에서 만나서도 아주 심각하게는 얘기 안 했지만 ‘반땅하는거 아니면 나 너한테 추천한다고 얘기 안 할거다’ 라고 얘기했는데 ‘그럼 돈 받아서 맥주 살께’ 라고…

사실 나에게는 돈과 친구에 관한 원칙이 하나 있는데, 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도 절대 꿔주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 원칙은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 정도부터 만들어서 지켜오던 것인데, 성격상 돈을 꿀 일도 별로 없지만 꾸면 금방 갚는데, 꿔준 사람에게 갚으라고 재촉은 잘 못하는 터라 계속 얘기하기도 싫고 또 그러다가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 데에서 나왔다. 말하자면 돈 때문에 친한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고, 그런 걸로 문제가 생긴다면 그런 관계는 유지할 필요 없다는 것이 내 생각… 그리고 어찌 보면 지금의 이 상황도 그 원칙을 적용해야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보안업체를 선택하는데 친구의 도움이 정말 더해졌다면, 내가 그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 돈을 가지고 이런 생각할 이유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건 진짜 친구의 돈일 테니까. 그러나 솔직히 친구는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우연히 내가 선택하려는 보안업체의 서비스를 집에 들여놓았기 때문에 어부지리로 득을 얻게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냥 간단하고 너그럽게 생각하면, 친한 친구한테 가는 돈인데 그냥 친구한테 그 돈을 다 먹게 하고 맥주나 한 잔 얻어먹으면 되는 것 아닐까도 싶지만, 과연 내 친구라는 사람은 정말 그냥 앉아서 나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 돈을 혼자서 꿀꺽 다 먹고 싶은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돈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기도 하고…

하여간 뭐가 가장 좋은 답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쓴다는 보안업체도 월 유지비가 똑같던데 혹시 그 쪽은 어떤가 좀 알아봐야겠다. 조건 비슷하면 친구와 이런 일로 갈등을 겪거나 내 기분이 상하기 전에 아예 다른 회사를 써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아, 역시 돈 앞에서 나 역시 큰 사람은 될 수 없는가 싶고, 또 나 아니면 돈 생기지도 않을 텐데 먼저 돈 생기면 어떻게 나누자고 얘기도 안 한 채 다 먹으려는 친구한테도 섭섭하고(지난 달에 생일이어서 내가 이번 주말에 밥 사주겠다고 얘기도 했건만…), 그냥 큰 그림을 봐서 아예 이렇게 신경 쓰이는 상황 자체가 생기는 게 가장 싫고…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궁금하다.

(학교, 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쉬는 시간에 이 글을 쓰는데, 모국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동포인 듯한 어린이가 무려 도서관 안에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는 무개념을 작렬… 참다 못해 통화는 나가서 하시라고 점잖게 권해드렸다. 오늘 이 일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까칠한 듯-_-;;;)

 

 by bluexmas | 2009/01/08 14:12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starla at 2009/01/08 18:35 

아니, 그게 적은 돈도 아니고, 처음에 얘기가 나왔을 때 그 친구분이 ‘그럼 반땅 하자’라거나 ‘맥주 사줄께, 괜찮아?’라거나 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건 진짜 나눌 생각이 없었다는 건데; 그 시점에서 다른 데 알아보셨으면 마음 편하셨을 듯…

그냥 호탕하게 마음 갖는 것도, 받아주는 쪽에서 그게 호탕한 것인 줄 알아줄 때 가능한 얘기지, 아니면 빈정상한다고요- 괜히 제가 씩씩거림.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1/09 13:42 

생각을 계속할 수록 화가 난다기 보다는 그냥 실망스럽더라구요. 생각해보니 나 때문에 생기는 돈인데 친구는 한게 없거든요. 게다가 더 괜찮은 보안업체를 찾아서 아마 거기에 맡길 것 같아요. 너무 열 받지 않으셔도 돼요, 하하^^

 Commented at 2009/01/09 22: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1/10 15:35 

저도 비공개님께서 하셨을 법한 생각을 했거든요. 뭐 그렇게 얘기하고 나중에 준다거나 이런 거 있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에요, 대부분의 경우는. 미국애들이 그런 경우는 드물거든요. 그냥 하고 싶은 얘기 직설적으로 하니까요.

글에도 쓴 것처럼 친구가 진짜 뭔가 도와줬으면 저도 이런 생각 하지 않죠. 그 돈은 사실 제가 거기에 보안 서비스를 가입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서 친구가 이름을 빌려주는 것으로 생기는, 그러니까 분명 합작으로 생기는 돈인데 뭐 어쨌든 계속 얘기하면 좀 그렇구요… 그냥 이런 글은 솔직하다기 보나는 사실의 나열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어요. 기본적으로 생각하기로는 어차피 저를 안 드러내고는 글이라는게 안 써진다고 믿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