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김 아무개 선생님은 따지고 보면 산만함이 정신병에 달했던 내가 그나마 어린이다운 어린이가 되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분이셨다.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면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되지만, 그때는 내가 졸업하는 걸 보고 다른 학교로 가시겠다고, 4년 동안을 그 학교에 머물러 계셨었다. 보통 3, 4년이면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공립학교 선생님들의 운명이었음에도.

솔직히 그때도 찬성하지 못했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게 할 수 없는 선생님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천국와 지옥에 관한 것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하느님이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착한 일과 나쁜 일을 각각 몇 번씩 했는지 세어 기록한 다음, 죽고 나서 착한 일을 더 많이 했으면 천국에, 나쁜 일을 더 많이 했으면 지옥에 가는 거라고 얘기하셨다. 그리고 그 때 예로 드신 수는 5,000과 4,999였던 것 같다. 착한 일을 5,000번 하고 나쁜 일을 4,999번 하면 천국에 간다고.

천국에 갈 거라면야 착한 일 딱 한 번 더 많이 하고 가는게 더 짜릿할 것 같기는 하지만, 이왕 지옥에 갈거면 나쁜 일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하고 가는게 사실 더 낫지 않을까? 이를테면 10: 45,789 정도로 아주 화끈하게… 물론 남들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주는, 그러니까 극악한 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냥 누군가 하는 얘기를 듣고 생각이 났다. 기쁨과 슬픔이 서로 상쇄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골짜기가 깊은 슬픔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는데, 그때 내게 떨어지는 기쁨이라곤 수퍼마켓에서 가격표가 잘못 찍힌 치약을 20센트 싸게 샀다거나, 도면을 남들 기대보다 45분 빨리 그려서 칭찬 한 마디 듣거나 하는, 기쁘려면 얼마든지 기쁠 수 있지만 어째 자질구레해서 초라하기까지 한 그런 종류였다. 그때는 욕심부려서는 절대 안 되고, 그냥 이런 정도만이라도 사흘 굶은 다음에 엄마새가 물어다주는 벌레 한 마리를 받아먹는 새끼 새 일곱마리 가운데 막내의 심정으로 끌어 모아가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늘 그러하듯이, 그때 내가 달고다니던 슬픔들은 그런 자질구레한 기쁨 백만개를 모아봐야 하나 정도 상쇄될까 말까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쁨과 슬픔의 균형은 너무나 슬프게도 잘 맞지 않았었다.  어쨌든 그런 시간도 이제 지날만큼 지났는데 나도 좀 욕심부리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아무런 이유없이 밀려왔다. 남들이 느끼는 그런 기쁨, 원해서는 아니었지만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기본 조건으로라도 바래볼 수 있는 뭐 그런 소망들의 충족, 뭐 그렇고 그런 것들. 아무도 나에게 그런 걸 바래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왜?

 by bluexmas | 2008/12/22 14:30 |  | 트랙백 | 덧글(5)

 Commented at 2008/12/23 12: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12/23 12: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12/23 14: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12/23 15:2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2/24 11:52 

비공개 1님: 그런 밴드가 있었나요? 저도 이름은 들어본 것 같기도 해요. 설마 밴드에 대해서는 썼을리가…

비공개 2님: 단기케잌알바 짭짤하겠네요. 저도 좀 하고 싶어요. 요즘은 너무 일이 없어서 연말 연시가 그냥 좀 지루하네요. 다음달에 졸업하시나요? 술이라도 한 잔 사야될 것 같은데… 졸업 후 진로는 어떠신지 궁금하시네요.

비공개 3님: 슬픈 사람들끼리 모여서 기쁘게 살면 그런 것이겠죠?

비공새 4님: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너무 황송하죠… -_-;;;; 폴 오스터는 2000년인가에 사람들이 좋다길래 뉴욕 3부작이었나? 그거랑 몇 권 읽어봤는데 이상하게 별 느낌이 없었어요. 그냥 원본을 읽어봐야 되나…

사실 전 엄청 사악한 인간이라 저에게 상처받은 인간들이 밤에 이 가는 소리에 잠을 못 잘 때도 있어요… 저도 정말 희한하게 좋은 일이 좀 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비공개님께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