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님 왕림
어제 집에 열시 다 되어 들어와서 소파에 앉았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텔레비젼과 DVD 플레이어 등등이 있는데, 분명히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별 생각없이 노닥거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오늘도 오전 내내 아무런 생각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영화 Milk를 보러 집에서 좀 먼 곳까지 차를 몰고 갔다 와서는 이상하게 막히는 도로 때문에 어이없이 피곤해져 소파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오디오의 앰프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텔레비젼, DVD 플레이어, 케이블 송신기, 그리고 앰프가 내 단촐한 ‘Home Theater’의 구성이었는데, 두께 10cm에 무게도 어이없이 무거운 앰프가 온데간데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잠이 확 달아났고, 1층의 일부인 마룻바닥을 둘러보니 뭐가 내 발자국이 아닌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도 같았다. 소름이 쫙 끼쳤다. 그제서야 위아랫층을 오르락내리락거리면서 자세히 둘러봤는데 그것 말고는 없어진건 없었다. 뭐가 없어진 건 없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문단속은 철저히 해 놓고 다니는 편인데다가 도둑이라곤 도저히 들 수 없는 동네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니,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아찔했고, 무엇보다 유일하게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집이라는 곳이 누군가의 침입을 받았다면 도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뻗고 누워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없어진 건 없어진 거니까 일단 마음의 평정을 찾기로 하고 나는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뭐 훔쳐갈 것도 없는데 보안장비 같은건 돈 아깝게 뭐하러 설치하냐, 생각하고 살았는데 아무래도 이젠 그 생각을 바꿔야만 할 것 같다. 갑자기 혼자 이러고 사는게 좀 처량맞게 느껴졌다. 훌쩍, 아니 젠장. 기쁘다 구주 오셔도 모자를 이런 상황에 도둑님 왕림이라니 지금 인생이 나한테 딴지를 거는거냐 뭐냐 대체.
# by bluexmas | 2008/12/21 12:18 | Life | 트랙백 | 덧글(7)
유 리님: 오늘 경찰 부르고 문단속 다시하고 집 열쇠를 모두 바꾸는 초 강수를 두었답니다. 비상열쇠가 없어진 걸 발견했어요. 보안업체로 부르려고 하구요… 신경이 좀 날카롭네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아무튼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