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험 자격

아주 가끔, 대체 ‘드디어’ 라는 단어는 어떤 상황에 쓰는게 가장 적합한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건축사 면허 시험을 위한 서류 심사를 어제 전부 끝내고 나서야 알았다. 이런 때 ‘드디어’ 서류 심사가 끝났다, 라고 쓸 수 있는거라고. 마지막 단계에서만 석 달이나 걸리다니, 뭐 경제 불황이니 어쩌니 해도, 과연 이 나라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헤아릴 수가 없게 된다. 이 곳의 사람들은 가끔 신중함이나 여유와 본인의 무능력이나 게으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면 후자를 전자라고 위장하고 나서 그저 시치미를 떼고 배째라 자빠져 있거나. 기록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에서 두 달인가 걸려서 나의 근무기록을 ‘심사’ 하시고, 그게 끝나면 또 내가 시험을 보고 싶어하는 주(조지아에 사니까 그냥 간단하게 조지아 주) 정부의 건축 및 인테리어 디자인 면허 관리처에 기록의 이관을 요청해서, 그 곳에서 나의 기록 및 학력, 자격의 적법성 여부 등등을 다시 심사하신다. 돈까지 50불 드셔가면서. 이런 와중에 인간성은 점검하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긴 한데(그럼 짤 없이 시험 못 볼지도… ‘인간성이 더러워서 건축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뭐 이런 것?), 내가 영주권도 없는 외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자 막판에 상황이 좀 꼬여 돌아갔다. 나의 취업, 또는 ‘착취’ 허가가 10월 1일 부로 갱신되었고, 그 취업허가에 따라가는 비자, 즉 입국 서류는 아직 한국에 갔다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상황인데 주 정부에서 나의 외국인으로써의 체류 적법성을 점검하시겠다고 해서 보내드린 취업허가서만으로는 심사를 마칠 수가 없다고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권의 PDF를 보내줬더니 또 첫 페이지만 보고서는 왜 만료된 여권을 보내냐고… 두 번째 페이지에 연장 기록이 있는데 그건 안 들여다보는 센스가 바로 미국을 이런 나라로 일궈낸 저력이라고나 할까. 욕만 안 썼지 분노를 가득 담은 메일을 몇 통 더 보내고 나서야 어제부로 나는 면허 시험에 필요한 모든 서류 절차를 마친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이 되었다.

…드디어.

연말인데다가 불경기라 일도 없으니 공부하기는 좋은 여건인 것 같은데, 시험은 일곱 과목이고 매 과목마다 단답형 문제를 평균 50-100개 거친 후, 실기를 보게 된다. 시험 비용은 평균 200불 정도. 언제나 드는 생각은, 아니 이렇게 어려운 시험 여러 과목까지 보면서 면허를 따도록 요구하는 직업의 보수는 대체 왜(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면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배고픈데 먹을게 없어서T_T)…

 by bluexmas | 2008/12/19 00:16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at 2008/12/19 00: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이엔탈 at 2008/12/19 08:43 

축하드려요 🙂 !!!!! ‘드디어!’ 근여;;

 Commented by starla at 2008/12/19 09:58 

우와, 잘 됐네요!

축하는 시험 통과하신 다음에 드려야지… -.-

간만에 머리 싸매고 시험공부하는 기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실기는 엄청 어려울 것 같아요.

저야 상상도 안 되지만…

 Commented by turtle at 2008/12/19 15:39 

그래도 일단 통과되셨다니 축하합니다.

저는 OPT 신청한 게 들어갔다는 Notice of Action letter가 오지 않고 있어요…하하하. -_-; 뭐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2/19 16:45 

비공개님: 당연히 별로 못 받죠T_T 그래도 밥은 어떻게든 굶지 않고 있어서 은총이라는 생각뿐이랍니다.

로이엔탈님: 시험도 보기 전에 지쳐버렸답니다, 하하…T_T

starla님: 그럼 축하는 내년 이맘때 받으면 다행일거에요, 시험이 워낙 쉽지 않아서요. 실기는 요즘 다 컴퓨터로 보는거라서 어떨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옛날에는 진짜 도면을 손으로 다 그렸다고 하더라구요.

turtle님: 감사합니다. OPT 받고 1년 더 머무르실건가요? 미국 이민관련 부서들은 워낙 그따위니까 일단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곧 해결이 날 듯…

 Commented by basic at 2008/12/20 12:44 

오. 타국에서의 서류 이야기는 너무 골치가 아프죠. 일단 한 관문 통과하신 것 같으니 축하드려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2/22 16:17 

그러게요. 이게 참 힘들더라구요.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았는데 이게 문이 일곱개라서 좀 버겁네요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