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깨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도 이렇게 비가 내리면 영화를 보러 나가야 될까, 라고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에는 비가 오지 않아야 달리기를 할텐데, 라는 바램도 생각의 꼬리에 살짝 덧붙이면서…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그쳐있었고 날씨는 쌀쌀해져 있었다. 금요일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렇게 잘 잔 편은 아니었다. 어젯밤에는 또 무슨 꿈을 꾸었던 걸까,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생각나는 건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냥 어제 커피를 많이 마신게 이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일들도 그 속을 깊이 파헤쳐보면 어느 부분인가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거울로 삼아서는 나의 상황에 비춰보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내 주신 문제에 대한 답을 진작부터 알고 있지만대체 언제쯤 답안지를 내놓고 교실을 나가야 되는지 몰라서 그냥 머뭇거리는 학생과 같은 기분이다. 너무 빨리 답을 쓰는 걸 보니 공부를 제대로 안 한 모양이라고 얘기를 들을까봐서 그냥 앉아는 있지만 생각해낸 답이 맞다고 생각하고 또 고칠 생각도 전혀없다. 어젯밤에 늦게 자서 되도록이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앉아있기가 괴로와진다. 그러는 사이에 교실 창 밖의 나뭇잎은 다 땅으로 돌아가버렸다. 곧 교실문을 나가 집으로 향할때면 오랫동안 코트의 주머니가 비어있었다는 걸 알아차릴 것만 같다. 언제나 주머니가 큰 코트를 즐겨입었는데 언젠가부터 그게 쓸데없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영화를 보고 서점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답안지를 빨리 내야만 할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답안지를 내자마자 훑어보고는 뭔가 문제점을 발견하는 즉시 복도 밖으로 뛰쳐나와 소리를 질러 나를 잡아 세울 것 같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처럼. 그러나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집으로, 집으로 걸어갈거다. 이젠 눈이 내려도 아무런 동요가 없으니 차라리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내 기분이 가라앉아있다고 다른 사람의 기분도 가라앉아있기를 바라는 건 차라리 죄악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더 예쁜 컵에 담긴 커피는 그만큼 더 맛이 없었다. 때로 사람들은 너무 모른다.

 by bluexmas | 2008/11/16 14:53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1984 at 2008/11/16 15:50 

어쨰서인지 호밀밭의 파수꾼 생각이 났어요. 때로 사람들은 너무 알기 힘들죠. 코드의 차이 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 때가 많아요.

이쁜 컵에 담긴 커피가 맛이 없어도 호머가 있으니 즐거운 휴일이 되셨기를. :>

 Commented by starla at 2008/11/16 21:45 

저도 다른 사람의 기분도 가라앉아 있기를 바라요.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너무 슬프고요.

Electric Guitar 책 위에 세워진 게 뭘까 궁금해지는 사진이네요.

 Commented by shin at 2008/11/17 04:25  

내 기분이 가라앉아있다고 다른 사람의 기분도 가라앉아있기를 바라는 거 많이 나쁜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뒹구는 miserable si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