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거주춤한 디저트 몇 가지
틈틈이 만들었으나 사진발이 안 받거나 아니면 아예 별 볼 일 없었던 디저트들의 패자부활전. 결승이 없어서 패자부활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 계란 안 들어가는 초콜렛 무스
지난 번에 아침을 해 갔을때 미친척하고 디저트까지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생각끝에 초콜렛 무스를 만들기로 했는데 계란을 흰자, 노른자 갈라서 거품을 내는 것도 귀찮지만 또 이게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지라,레시피를 뒤지다보니 젤라틴을 쓰는게 있어서 만들어봤다. Alton Brown의 레시피니까 믿을만도 하고. 링크를 찾아가면 쉽게 레시피를 찾을 수 있으니 여기에 올리는 건 생략하고 레시피의 핵심만 말하자면 생크림에 젤라틴을 넣어서 불리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초콜렛을 녹이기 위해 만든 중탕의 물에 젤라틴과 생크림을 섞은 컵을 넣고 녹여주면 된다. 만들기도 간단하고 비용도 덜들지만, 무엇보다 칼로리가 낮아지는게 이 레시피가 가져다주는 행복의 핵심이라고나 할까… 단 하나의 문제점이라면 젤라틴이 식물성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채식주의자에게게는 미리 알려주는게 좋다(젤라틴의 원료는 동물의 뼈나 껍데기). 회사에는 말도 꺼내기 전에 채식하는 애들이 집어먹어서 아예 말을 안 꺼냈었다. 원래의 레시피에서는 럼을 쓰라고 나와있지만 나는 오렌지맛 술과 오렌지 껍데기를 써서 오렌지 초콜렛 무스에, 요즘 유행인 초콜렛에 고춧가루 넣어서 매운 맛을 살짝 돌게 하는 경향을 따라 정체불명의 멕시코 고춧가루를 넣었으며 회사에 가져갈 때는 굵은 바닷소금으로 마무리를 했다. 집에서 내가 먹을 때에는 생크림과 쓴 제과용 초콜렛을 갈아 뿌려줌으로써 완성.
2. 바나나 카라멜 소스+바닐라 아이스크림
마리오 바탈리가 아이언 쉐프에서 한판 대결을 벌일 때 보면 데리고 나오는 금발 폭탄머리 여자 쉐프가 있는데, 이름이 앤 버렐인 이 여자가 최근에 푸드네트웤에서 자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The Secret of a Restaurant Chef’라고 제목이 뭘 위한 프로그램인지 말해주는데, 딱 인상과 뽀대처럼 프로그램을 시원시원하게 진행은 하지만 영어가 거의 방송영어 수준이 못 되어서 보기에 가끔 껄끄러워지는 이 프로그램에서 언젠가 선보였던 디저트 레시피. 녹인 버터에 흑설탕을 약간 넣고 카라멜을 만들다가 약간 덜 익은 바나나를 썰어서 익혀주면 된다. 단맛과 짠맛의 조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바닷소금을 조금 넣어주면 되고, 나는 거기에 계피가루를 약간 더해주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얹어서 먹으면 맛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스크림은 내가 만든게 아니었다.
3. 무화과 젤라토
무화과 젤라토는 옛날에 한 번 만든적이 있는데, 이번엔 LA Times의 레시피를 써 봤다. 마스카포네 치즈와 꿀을 섞는게 레시피의 핵심. 마스카포네치즈는 처음 사서 써 봤는데 미끌미끌한 감촉에 지방이 너무 많아서 그 질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만들어진 젤라토는 생각보다 굉장히 퍽퍽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무화과에 든 펙틴이 첫 번째 원인인 것 같고(무화과를 로즈마리와 꿀에 재워서 오븐에 구웠는데 나중에 펙틴이 나와서 전부 한 덩어리로…), 두 번째 원인은 아이스크림 기계 때문인 것 같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싸구려 아이스크림 기계는 정해진 한도대로 꽉 채우면 너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또 너무 적게 채우면 딱딱한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져서 3/4정도를 채울 수 있는 만큼 만들어 채워주는게 중요한데 레시피는 반 정도 채우는 것이었고 계산을 안 해서 그대로 만들었더니 돌린 시간의 절반 정도는 완전히 하나의 얼음덩어리가… 하여간 50점짜리. 맛도 별로였다.
마스카포네 치즈도 있겠다, 야심차게 티라미수에 도전을 해 봤으나 아무것도 아닌 무엇인가가 되어버렸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크림과 과자의 층이 적어도 세 겹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도시락통에 넓게 펴바르느라 겨우 한 겹짜리가 되어버려서 대체 뭐가 뭔지도 알 수 없었고 생크림과 마스카포네 치즈의 조합이 치약과 같은 질감을… 생각해보니 레시피도 엉터리였던 것 같다. 원래 이 정도 실패하면 올리지 않는게 철칙인데 로마유적처럼 허물어져가는 티라미수를 언급하셔서 만들어봐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해주신 분이 계셔서… 그러나 이건 로마 유적도 아닌 폼페이의 폐허가 아닐까 싶다. 발굴해봤더니 집이었는지 화장실이었는지 가축이었는지 애완동물이었는지, 심지어는 사람이었는지도 알 수 없는 덩어리진 그 무엇, 그게 바로 이것이 아닐까. 두 입인가 먹고 나머지는 냉동시켜놨는데 언제 다시 꺼내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나도 모르겠다.
올리려고 사진을 찾아보니 사진마저도 제대로 된 게 없구나. 너무 실패작이라 찍으면서 분노에 손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던 것일까.
# by bluexmas | 2008/11/13 13:11 | Taste | 트랙백 | 덧글(7)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2님: 이 모든 건, 다 사람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것이겠죠 뭐. 사람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요. 물론 자의 반 타의 반이죠. 어쨌든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뭐라고 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알톤 브라운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지식위주라서 재미있어요. 이 동네 살아서 지난 주 월요일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원작자인 마가렛 미첼의 생가 겸 박물관에서 책 사인회 같은게 있었는데 간다고 그러고서는 까먹었더라구요. 그날 일이 좀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turtle님: 티라미수는 turtle님께 헌정하는 것, 아시죠?^^ 저는 어째 마음에 다 안 들었어요…
liesu님: 여러숟갈 드셔도 괜찮아요. 아직도 좀 남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