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작은 좌절
요즘 꽂혀서 열심히 먹어 주고 있는 통밀식빵이 있다. 한 덩어리에 $3.69라는, 아주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혼자 다 먹으려면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럭저럭 사랑해주고 있는, 그런 녀석이다. 지난 주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퍼마켓에 갔는데, 이 녀석들을 두 덩어리에 $5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두 덩어리를 사려고 집어들었더니 유효기간이 며칠 안쪽으로 다가와 있었고, 나는 그래서 싸게 파는가보네, 라는 생각으로 그냥 한 덩어리만 집어들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 한 덩어리만 사도 그만큼 싸게 파는 경우를 많이 접해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값을 치르고 나와서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할인혜택은 없었다.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아니면 ‘그냥 두 덩어리를 사서 하나는 냉동실에 넣어 놓을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거나), 다시 돌아가서 물어보기가 더 귀찮아서 그냥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 오늘 점심에 수퍼마켓에 들렀는데 식빵은 여전히 할인중. 마침 집에 빵도 떨어졌겠다, 이번엔 큰 맘 먹고 두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어차피 야근도 계속 할텐데 저녁은 이걸로 먹으면 되겠네, 하는 뿌듯함 비슷한 마음과 함께… 그러나 또 아무 생각없이 돈을 내고 회사에 돌아와서 영수증을 확인해보니 두 덩어리를 샀는데도 할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쓰디쓴 좌절감이 몰려왔다. 두 덩어리를 사도 써 붙여 놓은대로 할인을 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일주일동안은 밥도 하지 말고 빵만 먹고 살아야 될 것 같다.
살다보면 좌절감은 정말 자질구레한 곳에서 느껴지게 마련이다, 나는 $2.38에 좌절하고 있으니…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좌절감은 정말 내가 $2.38을 손해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2.38을 손해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보고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뭐 이를테면 누군가 나에게 기분 나쁜 소리를 했다고 치자, ‘너는 xxx하고 yyy한 사람이야’ 라고.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따지고 보면 기분 나쁜 것이야 다 똑같겠지만 왜 기분이 진짜로 나쁜지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음을 알게 된다.
1. 누군가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싫다: 불치병일 수도 있다. 이건 발화자가 누구냐와 전혀 상관없이 전 인류를 향해 품고 있는 증오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것 역시 좀 더 파고 들어가보면 인류 자체가 싫거나 인류는 싫지가 않은데 그냥 누군가로부터 뭔가 듣는게 싫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2. 특정인이 싫다: 이럴 경우엔 사랑한다고 말해줘도 싫을 것이다. 인류 자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인이 미운 경우.
3. 남에게 뭔가 말하도록 약점을 보이는 내가 싫다: 이것도 약간 중증이다. 쓸데없이 완벽을 추구하거나 그냥 십자가를 혼자 짊어지고 가면 모든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실제로 xxx와 yyy는 나의 약점도 아니고 상대방이 그냥 공격하기 위해 던진 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살다보면 이런 경우가 불가피하게 벌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뒷맛은 더럽기 마련이다.
4. 내가 xxx하고 yyy한게 싫다: 자신의 다른 약점은 용서가 되는데 특별히 용서 안 되는 구석이 있다. 그런데 그걸 누군가가 들춰내는 경우. 자신도 뼈저리게 의식하고 있는데 누군가 들춰내면 화가 나는데 그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나는 화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경우일 확률이 높다. 상대방의 의도가 공격이었냐, 아니었냐를 떠나서.
5. 그냥 모든게 다 싫다. 말도, 사람도, 약점도, 나도:….. 아멘.
…그런데 왜 식빵 두 덩어리와 $2.38이 여기까지 온거냐.
# by bluexmas | 2008/10/30 07:17 | Life | 트랙백 | 덧글(3)
그나저나 식빵할인.. 저였으면 가게에 따지러 갔을지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