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프로슈토, 라비올리
휴가에서 돌아오면서 그 동네 사람들이 많이 먹는 Crispbread를 사가지고 왔다. 사실 미국에서도 많이 보아왔던지라 굳이 사가지고 올 필요는 없었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고나 할까…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사온 건 Wasa라는 상푠데, 그 동네에서는 어느 수퍼마켓에 가도 다양한 상표, 크기, 재료별로 이 녀석을 볼 수 있었다. 빵이라기 보다는 과자, 크래커에 가깝기 때문에 참 크래커처럼 카나페의 받침으로 쓸 생각으로 뭘 올리면 좋을까 생각을 했는데, 9월쯤 부터 시작되었던 무화과 철이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어서 아주 구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무화과를 사다가 젤라토도 만들고 술안주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년에 브리치즈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몇 번 먹었던 것처럼 무화과는 짠맛과 지방을 가진 치즈나 햄 종류와 굉장히 잘 어울리기 때문에 무화과와 크림치즈, 그리고 프로슈토를 올린 카나페를 만들었다. 이 조합은 사실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새로울 것은 없긴하다. 지난 주에 사온 로즈마리가 너무 많이 남아서 크림치즈에 섞었는데, 사실은 라벤더를 쓰고 싶었지만 살 수가 없었다(어디엔가에서 라벤더 카라멜 시럽-마스카포네 치즈가 조합된 크레이프 디저트를 먹은 적이 있어서 이런 종류의 치즈에는 라벤더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뭐 여기에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프로슈토는 이탈리아 햄인데, 작년에 이름만 빌린 미국 싸구려를 샀다가 종이장처럼 얇게 썰어달라고 했는데도 껌처럼 질겨서 씹어 삼킬 수가 없던 기억이 나서 이번엔 큰맘먹고 파마잔 치즈가 나온다는 그 Parma 지방의 프로슈토를 샀다. 약간 과장을 보태서 건조숙성시킨 고베 쇠고기 스테이크 가격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물론 나는 많이 먹을 필요가 없으니 아주 조금만 사서 별 부담이 없었지만.
만드는 건…간단하다. 다진 로즈마리 잎을 약간 거품낸 크림치즈에 섞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크래커에 얹은 뒤, 프로슈토를 말아서 얹고, 또 그 위에 무화과를 얹으면 된다. 짠맛이랑 질감을 보강하려고 굵은 바닷소금 알갱이를 얹었다. 입에 넣으면 먼저 바닷소금의 짠맛이 다가오고, 무화과의 단맛, 프로슈토의 짠맛, 그리고 크림치즈의 질감이 차례로 섞이는 가운데 크래커의 고소한 맛과 바삭한 질감이 그 모두를 하나로 엮어준다. Chardonnay는 보다 좀 단맛과 향이 적은 백포도주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너무 오랫만에 마시다보니 반가워서 어울리고 자시고 따질 겨를도 없이 그냥 술술 넘겼다.
지난주에 만들었던 파스타 반죽이 반 남았길래 라비올리 만들기에 도전했다. 예쁘게 만들기가 어렵고 또 귀찮아서 그렇지, 그냥 혼자 먹기 위해서 만들자면 하나씩 싸야만 되는 만두보다 훨씬 만들기 쉬운게 라비올리다. 보통의 파스타를 만들때처럼 얇게 편 반죽을 깔고 그 위에 같은 양의 소를 적당한 간격으로 올린 다음, 반죽이 닿는 부분에 물을 바르고 같은 크기의 반죽을 올리고 손가락으로 잘 눌려 여며준다음 자르면 된다. 라비올리의 소는, 예전에 마리오 바탈리의 몰토 마리오를 보았을 때 리코타 치즈에 삶은 시금치가 기본이라고 주워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시금치 챙기기도 귀찮고 취향도 아니어서 리코타 치즈, 파마잔 치즈, 그리고 lime zest를 조금 섞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토마토 소스도 만들었지만 미트볼이나 볼로네제가 아닌 이상 토마토 소스 파스타는 별로 먹고 싶지 않으므로 아직도 많이 남은 로즈마리와 마늘, 샬럿을 올리브 기름에 볶다가 엄청난 양의 버터를 섞어 만든 소스에 버무려 먹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평범한 맛의 파스타를 구원하는 파마잔 치즈로 마무리했다.
늘 아무 수퍼마켓에서나 살 수 있는 리코타 치즈를 쓰다가 이번엔 좀 비싼 녀석을 써 봤는데, 질감이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 결과적으로는 두부랑 너무 질감이 비슷해서 만두를 먹는 느낌과 너무 비슷했다고나 할까…아직 치즈가 많이 남았는데 되는대로 다음주에는 라비올리를 만들어서 얼려놓아야 할 것 같다. 바로 이 라비올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왜 내가 만들어왔던 음식들이 식당 음식과 비교해봤을때 심심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그 열쇠는 버터와 소금이 쥐고 있었다. 짜고 느끼하게 만들었더니 느낌이 비슷했다. 역시…
오늘의 ‘덤 사진 bonus shot’은 ‘대재앙 Catastrophic Disaster’ 라고 이름 붙여진 페페로니 피자. 냉장고에서 반 년 이상을 머문 페페로니와 유효기간이 며칠 지난 생 모짜렐라 치즈, 빵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구우면 빵 대신 벽돌이 되는 반죽 모두를 처치하기 위해 급조했으나 그렇게 급조한 만큼 너무 맛이 없었다. 게다가 오븐에 넣는데 반죽이 팬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모양마저… 그래도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는 나름 괜찮았는데, 엄청난 양의 마늘과 양파, 샬럿을 볶다가 닭고기 국물과 토마토를 넣고 한참 끓인 뒤 믹서로 갈면 완성… 사진은 안 찍었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만든 새우 크로켓에 곁들여 먹었다.
# by bluexmas | 2008/10/14 13:19 | Taste | 트랙백 | 덧글(8)
요새 무화과 요리가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어제 donna hay 요리책을 한 권 샀는데 거기서 무화과를 캐러멜라이즈해서 마스카프로네 치즈랑 조합한 것을 보고 한 번 해봐야겠다고 마음만 먹었어요. 과연 언제 실행에 옮길 수 있을런지…ㅠㅠ
비공개 덧글입니다.
라벤더 향은 강해서 식용으로 쓸 생각은 안 해봤어요.
샴푸 냄새처럼 느껴질까 봐서요.
아무 라벤더나 다 괜찮을까요.
담에 마스카포네 치즈를 사면 조금 잘라서 섞어 봐야겠어요.
생 무화과는 맛본 적이 없네요.
마른 무화과로부터 맛을 유추해 보긴 하는데…
(저 카나페는 대체 얼마짜리 카나페? >.< )
turtle님: 저 카나페 만들고 남은 무화과는 꿀이랑 로즈마리에 버무려서 오븐에 구워 caramelize 시킨 다음에 아이스크림 베이스를 만들었어요. 아직 기계를 안 돌렸네요 그러고보니까…
비공개님: 건강이 안 좋으시다면 외식은 덜 하시는게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구요. 생생우동 그만 드시고 멸치국물에 국수라도 삶아 드시는게…^^
스티비님: 페페로니 피자 진짜 맛 없었어요-_-;;;전 밤에 배고프면 그냥 물을 많이 마시고 자요. 그럼 돈도 아끼고 살도 빠지고-_-;;;
그대로두기님: 사실 서양요리에서 쓰는 향신료 종류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너무 강하게 느껴질 확률이 높죠. 실란트로도 그렇고 타임도 알고보면 꽃향기가 강하고…제가 먹었던 건 라벤더 카라멜 소스였는데 정말 라벤더를 넣었는지 추출액을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주 많은 양을 넣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생무화과는 마른 것보다 조금 단맛이 부드럽고 풋내가 나죠.
산만님: 피자치고는 상당히 거한 이름이죠^^ 냉지옥에서 나와 불지옥으로 가는 불운한 재료들과 왜 존재하는지 맛이 아예 없는 반죽. 위만 긁어먹어도 괜찮을만한 조합이였지요,네.
zizi님: 식당에서는 비싸겠지만, 전 원가에 드릴 수 있어요. 물론 단골한테만… 그래도 사실은 얼마 안 들었답니다. 들어간 양으로만 치면 재료값 한 오천원 들었을거에요. 그 가운데 프로슈토가 반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