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성찰 및 비판
제목만 거창하고 사실은 농담할 거 아니냐고? 뭐 그렇게 생각하시겠다면야 안 말리고…
조금 전에 들어왔다. 요즘 야근모드에 돌입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시간을 늘려왔는데 뭐 그렇다고 피터지게 하는 건 아니고, 오늘도 열 시까지 슬렁슬렁 하다가 퇴근해서 학교 체육관에서 달리기 하고 집에 오니 열 두시 반이었다. 주말에 만들어 놓은 참치+연어 크로켓을 튀겨 도시락을 싸고 나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두 시에는 자야된다. 홀푸드에서 3불 주고 산 아르헨티나 멀롯을 땄는데 아르헨티나와 멀롯이 캘리포니아 말벡과 같은 엉거주춤한 조합의 느낌을 주듯 이 포도주는 좀 엉거주춤하다. 맹한게 완전 피노 누와 같으니까. 차라리 기쁘다. 3불에 피노 누와 마시는 기분이라서.
보통 야근을 계속하게 되면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뭔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기분에 가벼워지기 마련인데, 이번 주에는 그런 느낌도 별로 없다. 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을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잘 안 드니까. 나는 계속해서 화가 나 있었다. 정말 지난 주 내내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너무나도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블로그를 닫고 싶었다. 매일매일 퇴근하면서, 집에 가자마자 밥 차리기 전에 블로그부터 닫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건 쓰고 싶은 욕구가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이어서라기 보다는 누가 보든 안 보든 매일매일 글을 써서 올려대는 사람이 블로그를 닫는 시늉을 해서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구한테 뭔가 말해서 위로를 받고 싶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또 위로 비슷한 그 어느 것이라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대체 내가 내 자신을 얼마나 더 괴롭히면서 지속시킬 수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결국 화병이라도 터져버린 것처럼 금요일 아침에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고 썼던 것처럼 회사를 하루 쉬어야만 했다. 계속 잠을 자서 오후 한 시가 넘어 일어나 보니 화창하고 포근한 날씨가 정말 자아 성찰에는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거나 주워 먹어 배를 채우고는 소파에 누워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왜? 나는 지금 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워야만 하는 것일까… 그냥 ‘아 #발 기분이 더러워’ 라고만 생각하고 술이나 먹고 자빠져 자버리는 건 나라는 사람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바닥까지 내려가서 무슨 글씨가 쓰여져 있는지 봐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끼니까. 그래서 나를 더더욱 집요하게 괴롭힌다. 배부른 소리 좀 작작하고 나를 좀 납득시켜보라니까, 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지…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휴가에 대한 거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그건 그 휴가에서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신선해져서 가기 전까지 나를 너무나도 짜증나게 했던 온갖 일들을 적어도 몇 달 동안은 조금 더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었다. 그 긴 시간과 그 엄청난 돈을 쓰고 돌아왔으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렇다, 강박관념은 나의 정서적인 애완동물인 것이었다. 목줄을 채워놓지 않으면 쉬지 않고 옆에서 빈정거리는 애완동물, 그래가지고 뭐 제대로 살겠어? 더 미친듯이 해야지, 뭐든지… 다른 부분에서는 사실 내 성장과정에 대한 불만이 없는데, 바로 여기에서는 약간 원망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지금보다도 더 잘해야만 한다는 다음에 대한 기대를 주입받으면서 자라왔으니까, 그게 문제 하나를 더 맞든,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든, 뭐든지간에. 나는 언제나 불가능에 도전해야만 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여간 그래서 난 일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몇 시간 자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전혀 딴 사람인 것처럼 뭐든지 가볍게 가볍게 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하루 이틀이 지나자 마자 그런 기분은 풍선에서 바람빠지듯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나는 또 다시 찌들어버린 기분이었다. 나 자신이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나의 현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머리를 움켜쥐고는 바로 올가미를 목에 씌워 당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캑캑거리며 숨막힌다고 발버둥을 쳐도, 내 현실이니까 나를 제대로 괴롭혀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조금씩, 그렇게, 올가미를 당기는.
그런 상황에서 엉뚱하게도 나는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뭐랄까,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제대로 대처를 못해서 짜증이 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상황이 싫어서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면 뭘 어떻게 해야되는지 알고 있는데도 그걸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여기에 쓰자면 너무나도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변죽만 울리자면, 세세한 방법들을 거론하기 이전에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 변화를 불러오려면 내가 해야될 것은 결국 주중에는 회사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주말에는 또 집에서 뼈빠지게 뭐가를 해야된다고… 그러나 주말이면 술이나 마시거나 아니면 술이나 마시거나 쓰러져 자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게 벌써 몇 달인지… 집은 쓰레기장이고 회사는 정말 간신히 다니고 밥이나 간신히 차려 먹고… 결국 모든게 간신히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나에게 너무 화가 났었던 것이다. 왠지 이것보다는 내 삶이 조금 더 매끄럽게 돌아가게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정말 간신히 하고 있지 않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글쓰기 였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뭔가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생각도 있고 그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놓은 것들도 있고 또 되든 안 되든 쓴 것들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단 시간이었고, 그 다음에는 정서적인 배분이었다. 사실 나는 일하는 시간에는 정말 그런 생각들을 딱 접어놓고 일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하고 싶은데 요즘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그건 일이 갈수록 반복적이고 재미없어지는 것과 같이 맞물려 점점 더 나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상하게 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루 일과가 끝났을 때 좋은 얘기라도 해주는 것들이 때로 나에게는 너무 의미가 없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내 생각에는 오늘 내가 일을 한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을때… 돌아보니 대체 언제가 마지막으로 내가 하루를 마쳤을 때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기분을 느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했다. 다들 회사에 자기 삶을 맞춰 어느 날은 야근하고, 또 어느 날은 야간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때 나는 생각날 때마다 적어놓은 이런저런 것들을 짜맞춰 가면서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그냥 순수하게 내가 조직의 일원으로써 기능하려는데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될 것인가? 라는 회의를 했다. 그리고 그건 승진이나 연봉인상, 뭐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범주에 드는 것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과 방법을 찾기 위한 고민의 일환이었다.
계속 일에 관련된 얘기만 하는데 블로그는 왜 닫고 싶었냐고? 이런 생각이 있었다. 나는 뭔가 정말 쓰려면 블로그를 닫고 쓰기만 해야될 것 같았다. 이 돈도 나오지 않는, 아무런 이득도 없고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인기 따위도 전혀 없는 블로깅을 위해 나는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하루에 많아야 두 세시간뿐이다. 그러나 쓰고 싶은 건, 그리고 쓰고 있는 건 언제나 이 블로그에 올라오는게 전부가 아니다. 매일매일 낮에는 오늘 집에 가면 이걸 써야되겠다, 라는 마음을 먹지만 결국 집에 돌아와서는 뭔가 다른 것들을 블로그에 쓰고 꼭 올린다. 왜 그럴까… 돌아보면 나에겐 이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으니까,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현재의 상황을 보면 결국 나에게는 소통의 창구라는 것이 결국 이 블로그 밖에는 없다. 말하자면 여기에 어떤 형태로든 올라오는 얘기들은 밖에 나가서 거의 입에 오르지 않는다. 누구한테 어떻게 해야될지도 모르는 얘기들 밖에는 없으니까. 이번주에 내가 우리말로 한 얘기라고는 M 선배에게 한 한 마디, 최진실 얘기 들었죠? 가 전부였다. 그리고 남은 소통의 에너지는 전부 이 블로그나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해 쓰고 있는 것들에 쏟아부어졌다. 그러나 솔직히 어떤 때에는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내가 단지 배설 말고는 뭘 얻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얻는다는 것은 이득의 범주에 엮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사람은 육체로만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니까. 나의 정서는 어떻게 돌보아지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정말 말 할 수 있는게 없다. 요즘 나의 정서라는 것은 정말 실수로 주인집을 탈출해서 밥 굶으면서 추운 날씨에 쏘다니는 털 빠진 강아지와도 같으니까. 불필요한 자유말고는 얻는게 없는 기분, 그게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나도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하여간 그런 기분이다.
어쨌든 그랬다. 뭔가 소통하겠다고 이렇게 소모적인 글을 매일 올릴게 아니라, 그냥 딱 닫아버려서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아무런 기대도 없이 내가 꼭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쓰는게 차라리 낫지 않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슨 이득을 얻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문자로 구체화시킴으로써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그런… 언제나 말로는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사실 뭔가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뭔가 받는 것도 바래왔지만, 그냥 마음껏 줄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놓고 줄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른 사람의 마음은 대체 어때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지금 그런 상황에 이른 것 같은데 아무에게도 어떤 것도 물어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이런 기분이 대체 어떠냐고, 그런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마 물어볼 수도 없다는 말이다. 결국 내가 처한 상황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그냥 받지 못해 아쉽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차라리 마음이 가벼웠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쉬운 상황이니까. 곧 해결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정말, 내가, 나의 개인사가 처한 상황에 내가 원하는 전환점이 다가올지, 나는 지금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 * * * *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따뜻하고 화창한 오후 내내 차가운 마룻바닥에 발바닥을 대고 앉아 침묵의 시간을 보내다가 토요일에 이르러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일요일에는 아침을 먹고 서점에 노트북을 들고 찾아가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밀린 잡지들을 읽고, 잠시 생각했던 것들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의미가 없어진 몇 개의 링크를 정리했다. 그제서야 멀리 떠나있던 것들이 돌아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건 나의 몸이고 나의 마음이었다. 또 당분간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괜찮다고 느끼는 건 결국 조삼모사격으로 나를 속여가며 얻는 일시적인 감정이다. 결국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한데 나 혼자 꾀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해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될지, 그건 정말 알 수가 없다, 라는 생각으로 자아 성찰 및 비판을 위한 사흘짜리 주말은 막을 내렸다.
# by bluexmas | 2008/10/09 15:03 | Life | 트랙백 | 덧글(18)
블로그를 닫으시는 것이 방법이 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게 방법이 된다면야 보닌 이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도 말릴 수 없는 일일테지만.) 많지는 않더라도 댓글에서 의외의 위로를 받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거지만, 글 열심히 올려두신 거 잘 읽고 도움받는 이웃들이 많을 거예요. 같은 생각을 하지만 표현하는 재주가 부족한 저 같은 사람들 말이죠.
현실에서 좀 떠나있는 영화나 음악을 좀 감상하시고 기분전환 하시길 바랄게요.
(인간에게 환타지는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뭐라도 써서 어떻게든 누군가에게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야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기분 전환은 충분히 하고 있답니다. 내일은 또 주말이구요.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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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주신 것만으로도 힘이 나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덧글 정리 안 되어도 괜찮아요^^ 덧글이 연설문도 아닌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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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메뉴를 위해 장을 보아왔으니 뭔가 또 몰두해서 만들고 나면 기분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저런 치즈종류만 다섯가지 있으니 이번 주말엔 치즈잔치나 벌릴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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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것처럼, 그래서 저도 블로그를 결국 닫지 않았답니다. 글에 블로그를 닫고 싶었다는 얘기를 쓴 이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닫지 않고 싶어서에요. 그러면 이거라도 지켜나갈 것 같으니까요.
네, 어제 집에 와서 싸구려 술 마시면서 정말 한 번도 쉬지 않고 썼어요. 내압이 생길때까지 기다리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죠…
참, 일상이 홍수로 쉽게 휩쓸릴 수 있다면 아무도 일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곁에 있으면 손이라도 잡아드리겠지만요….
감사드리는 마음에서 손잡는 얘기를 지어냈어요. 아무쪼록 마음에 드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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