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빵집
번 버스를 기다리곤 했던 마장동의 버스 정류장은 빵집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빵집이었다, 베이커리가 아니고. 사실은 아직도 빵집과 베이커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 빵집은 베이커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뽀대를 가진 가게는 아니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빵집도 지극히 마장동스러웠던 것 같다. 그 동네는 세련됨을 죄악으로 정의하는 듯한 공기가 골목 곳곳을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살면서 그 동네를 싫어했다거나 뭐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고…
하여간 대학을 졸업하고도 유학준비를 한다는 핑게로 1년 동안 백수생활을 했던 나는, 77번을 타고 강남쪽에 갈 일이 많아지면서 그 빵집을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가 많아졌는데 버스가 오는 길을 내다보는 대신 빵집을 들여다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가게안에 있는 어느 것도 팔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주인이면서 빵을 만드는 듯한 아저씨가 언제나 냉장곤지 진열장 위에 높이 자리잡은 14인치 정도의 작은 배불뚝이 텔레비젼을 보면서 가게를 보고 있었는데, 가게 안에는 정말 수십가지에서 수백가지는 될 법한 빵이나 과자, 케잌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언제나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아저씨의 표정에는 벌써 오래전에 체념을 지나 해탈로 변한 듯한 감정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색들을 섞다보면 어떤 색을 얼마나 섞으냐에 따라 섞이는 색들이 이색도 되었다 저색도 되었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어떤 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흰색(빛의 경우)이나 검정색(빛이 아닌 나머지 경우)이 되는 것처럼, 빵집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는 그 안 팔리는 빵이나 과자 케잌들을 만들고 또 진열하고 지켜보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을 가져왔다가 결국 그것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지면서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는 감정상태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자기도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거나.
계속해서 내가 그 가게는 빵집이지 베이커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그 빵집에는 버스를 오래 기다리면서도 한 번쯤 들어가서 뭔가 살만한 게 있을까 주의를 기울여 볼만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벌써 생크림 케잌이 대세인지 오래인 그때였지만 빵집의 진열장에는 벗겨내거나 아니면 김치랑 같이 먹지 않으면 느끼해서 넘길 수 없는 버터크림이 나이 마흔에 스무살 여자아이처럼 보이고 싶은 아줌마의 소망이 화장으로 화한 것만큼이나 두껍게 발린 케잌뿐이었다. 그건 그러니까 케잌이 식욕을 떨어뜨리는 갑옷을 입고 있는 형국이었다. 중세시대에 십자군 원정을 나가야만 했던 남자들이 정조대의 사용을 심각하게 고려했고 또 실행에 옮겼다면, 그 빵집의 케잌은 먹히지 않기 위해 버터크림으로 만든 두꺼운 갑옷을 온몸에 둘렀고 그것도 모자라 해탈한 듯한 표정의 아저씨로 하여금 자기들을 지키게 했다. 그러므로 아무도 케잌을 사가지 않았고 그들은 언제나 냉장고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사실 내가 마장동에서 2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살면서 적어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77번을 타기 위해 그 정류장에 서서 빵집을 들여다보았지만 정말 단 한 명의 손님조차도 가게에 발을 들이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차가 막히는 시간이 아닐때면 성수대교를 건너는데에는 노래 한 두 곡 정도면 충분했지만 아주 늦은 밤이 아니고는 그런 시간이 잘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버스에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곤 했고, 그런 시간이면 어김없이 빵집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그건 저 빵집에 왜 사람이 오지 않을까, 와 같은 차원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 빵집은 왜 거기에 있어야만 할까… 그 빵집 주변엔 페인트 가게도, 활어회집도, 순대국집도 있었는데 언제나 어떤 가게에나 손님이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활어회를 사다가 먹는지 난 몰랐지만 나 같이 활어회를 일 년에 한 번도 안 먹는 사람까지 있는데 활어회집에는 사람이 언제나 있고 빵집에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을 나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아이러니는, 그렇게 생각하는 나 마저도 그 빵집에는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벌써 오래전에 파리바게트의 그대로 토스트나 흑미식빵의 애호가였기 때문에 어딘가 갔다가 집에 돌아올때면 그 두 가지 식빵 가운데 하나를 사가지고 왔고, 따라서 다른 빵집에 들를 필요가 없기도 했지만, 아주 가끔 정말 동네 빵집이라고 불리는 가게들의 빵이 먹고 싶어 어디엔가 들를때에도 버스 정류장의 빵집에는 들르지 않았다. 지금도 돌아보면 그 빵집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가게에는 무기력함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고 발을 들여놓는다면 나 역시 그 무기력함의 한 뭉치를 빵과 함께 얻어가지고 나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널때면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은 강물을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사람으로 하여금 발을 들여놓게도 만들 수 없는 빵집은 왜 존재할까, 세상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고, 또 그 이유 가운데 아주 분명하고 또 중요한 어느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주변의 것들에게 알리기 위함일텐데, 그것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과연 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 스스로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일때에 그것의 존재가 지속되는 것은 과연 얼마나 정당할까…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하다보면 버스는 그렇지 않아도 느리게 흘러가는 더러운 강물보다 더 느리게 강을 건널지라도 그 모든 순간이 찰라처럼 느껴질 법한 시간에 나를 강 건너에 내려놓곤 했다. 그리고 강 건너에는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이라고는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종종 기다리고 있었다.
# by bluexmas | 2008/10/05 14:57 | Life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2/02/01 02:47
… 고, 또 취재를 하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태된 동네 빵집들 가운데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 못한 곳들도 많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에 썼던 이 글에도 감상적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얼핏 한 적 있다. 물론 그건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출현과 맞물려 벌어진 일이다. 동네 빵집에 기술이 없어서 망한 게 아니다. 우 … more
나녹님: 그대로 토스트의 비밀은 마가린 알갱이를 반죽에 섞어서 구웠을때도 녹지 않게 보존했다가 소비자가 먹기 위해 구웠을 때 녹도록… 아마도 마가린 알갱이에 뭔가 화학처리를 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