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이번 주 내내 필사적으로 냉장고 청소에 매달리고 있다. 늘 농담으로 하는 얘긴데, 또 한 번 하고 싶다. 혼자 사는 남자의 냉장고 쓰는 법은 두 가지, 하나는 본래의 쓰임으로 신선한 음식물을 그렇게 그대로 보관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썩어가는 음식물을 당장 내다버릴 시간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덜 썩게 보관하는 것. 가기 전에 최대한 비웠는데도 뭔가 남아서 썩어가는 바람에 바야흐로 냉장고마저도 썩어갈만한 상황에 다가서고 있었다. 아무 것도 사지 않은 이런 때가 정말 냉장고 청소하기엔 딱이다.
2. 일상과 습관에 낯설때 한동안 지켜왔던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살짝 노력중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들은 술과 커피 적게 마시기. 물론 커피를 마시는 습관의 많은 부분은 잠을 쫓기 위한 것이니까 곧 살아날 확률이 높지만, 술은 좀 적게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다. 적어도 주말에만.
3. 감기는 거의 다 나았다. 아직 마른기침을 간간히 뱉어대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4. 3과 연계해서 수요일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반쪽 마라톤까지 두 달 남았는데 이렇게 한참 안 달리면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꼭 그만큼이거나 그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는데, 그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육체적이기 보다는 정신적인 측면이다. 결국엔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5. 예상과는 달리 여행 거의 내내 인터넷을 쓸 수 있어서 언제나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는데 여행 기분을 망칠까봐 자제하다가 그저께 일이 좀 한가한 틈을 타서 현실 점검 reality check을 했다. 파산하지 않을까, 라는 위기감에 며칠 잠을 못 잤는데 거의 비었지만 바닥까지 뚫어먹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 그러나 당분간 꽤나 쥐어짜대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6. 어디 갔다왔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너무 많고, 대답한다고 어디어디 갔다왔다고 얘기하면 거기 나도 꼭 가보고 싶은덴데 어떠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너무 많아서 며칠동안 똑같은 얘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했었다. 이제는 조금 진정 국면. 사진 보고 싶다는 사람도 너무 많아서 아무래도 뭔가 해야될 듯. 이 바닥엔 사진에 심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사진을 내어놓는 건 좀 버겁다. 다들 대포렌즈 하나 둘 씩은 가지고 있는게 이 바닥의 현실인데 나는 그냥 제일 싸구려 디지털 SLR에 렌즈도 그냥 딸려오는 것. 게다가 거의 언제나 그냥 자동으로 찍는다. 사진에 취미 붙이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 그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니다.
7. 경쟁사들이 정리해고를 상당한 수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 몇 년간 사세를 확장한 추세를 지켜보았을때 예상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8. 머리가 큰데도 변태스럽게 머리를 좀 길러보고 싶다는 욕망을 늘 간직하고 살아서 오늘 머리를 자르기까지 몇 번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나는 머리 기르면 안 된다. 그러기엔 정말 머리가 너무 크다. 머릿결이 어떻고 뭐 이런 건 나중 문제다. 그냥 머리가 너무 크다.
9. 미친 듯이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고 있다. 정말 한참동안 햄이나 소세지 말고 진짜 고기는 먹지를 못했더니 고기에 목매다는 사람이 아닌데도 기분이 야릇했다. 주말에 누워서 구워먹으려고 Rib Eye를 1.5kg 사가지고 왔다. 쇠고기 얘기를 하니까 생각하는 다른 얘기가 있는데, 분명히 어디엔가 썼을 것 같은데 그래도 또 쓸란다. 어릴때 미국에서 조기유학을 갔다온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Beef Eye Round를 ‘눈 주위 고기’ 라고 얘기하는 걸 본/들은 적이 있다. 소 눈 주위에 고기가 있긴 있나? 옛날에 마장동에서 자취할 때 소 대가리 사진 많이 찍어놨었는데 다시 들여다봐야겠다. 가죽 벗겨놓은 것들도 꽤 있다.
10. 그와 동시에 탈수증세가 상당해서 물도 미친듯이 마셨다. 이거 한 줄 쓰고 또 물 두 모금 마셨다. 널린게 유료화장실인 나라로 오래 여행다니면 결국 이렇게 된다. 다음에 그런 동네로 여행을 갈때는 깡통이라도 하나 가방에 달고서 다녀야 되는걸까.
11. 오늘 아주 오랫만에 아쉬움이라는게 어떤 감정인지 재정의하는 순간을 가졌다. 역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순간이면 내 삶을 원망하게 된다, 감히.
12. 아무래도 그만 쓰고 자야될 것 같다.
# by bluexmas | 2008/09/19 13:58 | Life | 트랙백 | 덧글(10)
전에 올리신 사진 보니까 앞머리는 꽤 긴 듯 하시던데 어디까지 기르고 싶으신 건기 궁금해요! 남자들의 로망 중에 긴머리와 파마, 같은게 있나봐요. 전 프랑스 영화에 나올 법한 여주인공의 짧은 머리가 로망인데, 음 저도 머리 크기 때문에…
(로즈마리의 아기,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의 바로 그 머리;)
비공개 덧글입니다.
2. 전 대학원 공부 시작하면서 나쁜 습관이 하나 생긴 것이 쵸콜렛이라 커피 섭취량이 늘었어요. 커피야 원래 너무 좋아하기는 하지만 쵸콜렛은 별로 craving한 아이템이 아닌데 공부가 세시간이 넘어가면 (전 이 세시간째가 고비더라구요) 달달하면서 텁텁한 쵸콜렛을 입에 물고 그 힘으로 남은 시간을 버티게 되더라구요. 한 달에 한 번 쵸콜렛 바를 먹을까 말까였는데 벌써 이번주에만 쵸콜렛 바를 세개를 먹었네요..
3. 다행이예요..^^ 그래도 일상으로 복귀하시면서 몸도 다시 차분해지는 듯해요. 여행 가시기 직전에는 거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셨잖아요..^^
4. 와…블루님 마라톤도 정말 진지하게 준비하시는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전 그런 자기 통제력이나 도전정신이 너무 부족해서 부러워요.
5. 헤헤. 그래도 마음이 풍족하실테니 temporary loss 쯤이야 즐겁게..^^ 사실 저도 요즘 계속 쥐어짜는 하루하루인데 (그리고 당분간 계속될 듯 해요) 처음 이주는 loss가 생겼다라는 걸 마음이 인식하기 때문인지 평소에는 별로 사고 싶지 않았던 것도 너무 사고 싶고 그걸 살 수 없는 마음이 살짝 속상했는데 지금은 즐기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어쩌다 얻어먹게 되는 밥 한끼도 어찌나 소중한지 행복지수는 오히려 조금 올라간 듯 해요
8. 하하하하. 그래도 하고 싶은거 하시지 그러셨어요. 다리가 굵어도 과감하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다거나 팔뚝에 살이 많아도 과감하게 나시 입고 다니는 사람들보면 얼마나 매력있는데요! 역시 당당함이 관건. 다음에는 하고 싶으시면 꼭 하세요!!
9. 그러고보니 고기를 못 먹은지 정말 오래됐어요. 마지막 비행때 영국에서 먹은 햄이 마지막이니까 거의 한달이 넘어가네요. 전 요즘 장어 덮밥이 참 먹고 싶어요. 그런데 홍콩에는 맛있는 장어 덮밥 집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사서 해먹을까 생각했지만 요즘 제 경제 사정으로는 장어는 어림도 없어서 포기…
10. 하하하하하. 유럽 화장실 인심이란… 참 갑자기 궁금한데 블루님 쓰신 글들 다 봤지만 전체적인 총평이 궁금해서요. 그래서 블루님께 북유럽이란 한마디로 어떤 곳이었어요? 너무 좋다를 100점으로 하면 어느 정도? (어쩐지 블루님은 이런 수학적 measuring을 싫어하실 것 같지만..)
11. 어떤 일이 아쉬우셨을까요..삶을 원망하실 만큼의 일이 어떤 거였을지 궁금하네요
12. 푹- 달콤한 잠 되세요. 일어나면 주말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구글에서 그 영화 찾아봤는데, 그냥 가운데 가르마에 묶은 머리던데, 맞나요? 영화는 상당히 분위기가…
비공개님: 머리가 커 보이는게 아니라 크죠, 하하. 전 옷차림이나 이런 건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 저한테 잘 어울리는 걸 찾는 방향으로 가거든요. 같은 맥락에서 짧게 잘라 뾰족하게 세우는 머리를 절대 안 하죠. 저랑 안 어울리거든요.
그 ‘누워서 구워먹는’ 거 시도해봤는데 어려워서 포기했어요. 항상 산문에 저런 운이 맞는 걸 넣는 장난을 치는 걸 좋아하는데 혹시 알고 계셨는지…
사자님: 1. 제 냉장고는 제가 안에 들어가서 숨을만큼 크답니다. 항상 거기에 뭔가 쓸데없는게 너무 많아서 좀 비워야 될 필요를 느끼죠. 이번에 좋은 기회…
2. 전 오히려 공부할 때는 잘 안 먹게 되더라구요. 배부른데 앉아있는거 괴롭잖아요. 그래서 회사에서도 밥을 아주 배부르게 안 먹는 버릇이 있어요. 저도 사실 초콜렛 좋아하는데 미국 초콜렛은 별로 맛이 없어요. 워낙 우유가 맛이 없다보니까. 살균 방식이 유럽과 다르죠.
3. 앗, 그 정도로 어딘가 아프지는 않았는데, 그래 보였나요?
4. 아직 그렇게 장거리를 뛰어본 적이 없으니 준비를 잘 해야 되거든요. 통제력이나 도전정신 아주 부족해요, 회사엔 맨날 지각…-_-;;;
5.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버는 족족 쓰기만 해서 걱정이죠.
6. 그러나 사실 카메라만 있지 사진은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게 또 사진찍는 세상의 고질병이죠. 기타랑 앰프는 있는데 음악은 없고 뭐 그런거 있잖아요. 해서 별로 신경 안 쓴답니다. 자기가 그래도 뭘 잘하는지 알게 되면 못하는거에 신경 덜 쓰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8. 절대 안 할 걸요?^^
9. 저도 장어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여기에선 생장어는 본 적이 없고 예전에 일본산인줄 알고 샀던 포장된 장어가 중국산임을 안 이후엔 사서 먹어본 적이 없어요. 작년에 부모님이랑 선운사 앞에서 먹은 장어가 인생 최고의 장어…
10. 로맨스가 없어서 35점이었는데요?^^ 로맨스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90/100은 망설임없이 줄 수 있죠. 뭐가 어디에 있어서 좋았다니 보다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11. 다 지나고 나면 부질없는거 아는데 가끔 그렇죠. 아주 가끔?
12. 사실은 두 시 넘어서 잠들어서 회사에서 좀 몽롱했죠.
basic님: 많이 웃으셔도 된답니다. 모르긴 몰라도 중국사람들보다 제가 더 클걸요? 하하…
바로 이 머리입니다!
대학 갓 들어오자마자 파마한 여자애들 머리랑, 정앞가르마로 그냥 기른 남자애들 머리가 제일 촌스럽지요 큭큭 🙂
기르시려면 파마하는 편이 편하고 보기 좋고 관리도 편한데-
미국의 미용실은 왠지 비쌀듯;
(저는 한국에 있는 미용실에서 한국말로 해도 원하는대로 안해주던데 하물며 영어로 말해야한다면…아아아.)
마음만 그렇지 머리 기를 것 같지는 않아요. 여기에선 한국사람이 하는 미용실에서 자르는데 팁까지 18불 준답니다. 보면 머리 하시는 분들이 자기 고집이 있어서 해달라고 해도 자기가 더 잘 아는데 그거 안 된다면서 안 해주는 분들도 많죠. 전 청#동에 있는 정#정에 몇 년 동안 갔었는데 거기에서 잘라주시는 분이 분당에 있는 분점으로 가셔서… 서울 갈 때마다 그분한테 머리 잘라달라고 하죠.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래도 여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바꿔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데, 남자들은 뭐 기껏해야 자르는 정도니까 변화가 별로 없죠. 자기 기술과 손님이 원하는 걸 잘 조합해서 머리 잘라주는 사람 찾기 쉽지 않더라구요. 저는 그래봐야 한 달에 한 번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돈 쳐바른 적 많았어요. 우리나라에 있을때는 잘라주는 사람이 한번 마음에 들면 몇 년 동안 가곤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딱 아니다 싶을때 그만 가는거죠. 어찌해서 연예인 머리 잘라준다는 사람한테도 잘라봤는데 너무 유행을 따라 잘라놔서 마음에 안 들더군요.
저도 뭐 살 그럭저럭 빼서 새사람(?)으로 살지만 그래도 강박이나 트라우마는 언제나 따라다니죠. 저 같은 경우는 아예 멀쩡히 서서 늘 지켜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