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차없이 안녕

저녁을 먹고 호텔을 가장한 모텔쪽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날씨가 포근해진 느낌이었다. 어째 이 도시는 나의 방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내내 시큰둥한 얼굴에다 찬 바람만 불어댔는데, 막상 간다니까 아쉬운지 붙잡는 시늉이라도 하는 듯한 날씨를 갑자기 내밀어댄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가차없이 안녕, 일 수 밖에 없다. 그건 내가 딱히 이 도시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사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는 다른 곳이 아닌 하와이이기 때문이다. 그냥 아침도 건너뛰고 늘어지게 자다가 어디 모래 사장에 나가서 책이나 읽을 수 있는, 뭐 그런 여행이 사실은 내가 꿈꿔왔던 여행인데 어째 그런 장소들은 다 무서워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고 나는 기자도 아닌데 수첩과 펜을 들고 또 사진이 취미인 사람도 아닌데 사진기를 메고 사는 사람만큼이나 거지도 많은 도시들을 쏘다니고 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아주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에게도 숨겨진 욕망처럼 생긴 소망같은게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계속해서 지금의 상황에 나를 적응시켜왔고 이런 여행은 그런 적응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내가 무슨 거대한 여행가로서의 꿈이나 어딘가를 다니면서 영감을 얻어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가 아니라… 설사 내가 그런 것들을 얻게 되더라도 그건 사실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다. 투정-할 여건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하고 싶은 생각도 절대 없고-이 아니라 바로 이게 내가 바라보고 사는 현실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현실의 부산물로써 사람들이 관심있어할지도 모르는 여행에 대한 얘기, 풍경, 건물… 뭐 이런 것들이 딸려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계속 이렇게 살다보면 곧 그 우선순위가 바뀔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그 전환점이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있다. 

 by bluexmas | 2008/09/09 08:02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Eiren at 2008/09/09 14:13 

하와이가 왜 무서워지셨을까요.;;[뭔가 있나요?? ]

사진 분위기 좋은데요~쓸쓸하면서 좀 추운, 고즈넉한 밤거리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12 09:27 

아뇨,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여행지가 하와이라서, 언제 가 볼까 싶거든요,덜덜… 이 동네는 가게들이 일곱시 전에 다 문을 닫아서 분위기가 밤이면 이렇더라구요. 날씨는 추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