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안에서

사실은 배 위에서, 라고 써야만 할 것 같은데 뭐 고기배 타고 바다 건너는 것도 아니고 갑판에 앉아 배타고 가는 세상은 벌써 오래전에 과거가 되었죠. 헬싱키로 가는 배, 라기 보다는 무슨 떠 다니는 아파트 이런 곳 안에 있는데 이 배는 좀 미친 배로 소문난 뭐 그런거라고 해요. 워낙 스웨덴에서는 술에 붙는 세금이 미친 수준이라서, 사람들이 이 배를 타고 가는 열 여섯시간 동안 미친 듯이 면세품 사재기에 열중하는거죠. 뭐 다른 것 없이 술… 어느 정도냐면 하이네켄 24캔들이 여덟상자 세트를 사면 손수레도 같이 끼워주는, 뭐 그런 상품도 있더라구요. 네 박스 사도 작은 손수레 딸려서 나가구요… 이 배는 오후 다섯시에 스톡홀름을 떠나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열 여섯 시간에 걸쳐 핀란드의 헬싱키로 향합니다. 사람들이 다들 술에 환장해서, 배가 출발하고 두 시간 동안 정말 바다와 섬, 그리고 침엽수로 이루어진 경치가 기가 막힌데도 정말 손에 꼽을만큼의 사람들이 갑판으로 나와서 그 경치를 보더라구요. 저는 그걸 보다가 이 동네 음식이라는 미트볼도 먹다가 면세점에서 초 싸구려 포도주, 집에 돌아가면 한 병에 5불에 파는 걸 사다가 놓고 마시면서 여행기를 쓰다가 잠시 바람이나 쐴까 해서 나왔어요. 객실에서는 인터넷이 안 되고 공중 컴퓨터가 두 대 있더라구요. 잠시 갑판에 가서 찬바람좀 쐬다가 다시 객실에 틀어박혀서 쓰다 말던 여행기나 마저 쓰려구요. 사실 밤만 되면 쓰러져 자고 싶은 유혹이강한데 왠지 싫어도 계속해서 기록해야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계속 뭔가 기록은 하고 있거든요.

뒤에서 저의 두 배는 몸무게가 나갈 것 같은 남자가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줄이고 물러답니다. 덧글은 헬싱키에서 달죠. 호텔에서 인터넷이 된다니… 헬싱키에선 단 하룻밤만 묵지만 좋은 건축물들이 많아서 기대가 많아요. 에로 사리넨도 있고 알바 알토도 있고, 스티븐 홀의 키아스마나 최근의 무슨 콘서트홀이었던가…

아, 면세의 은총을 입으니 초싸구려 포도주도 은근히 단데요? 여기에서 우리나라 스마일마크를 달려고 했으나 자판이 스캔디나비아, 러시아, 영어권까지 모두 소화하는 것이다보니 쉬프트 키를 눌러도 뭔가 쓸 수 없는 문자들이 꽤 되네요. 몰랐는데 핀란드는

스캔디나비아 반도에 있지만 언어의 기원이 다르다더라구요. 러시아와 붙어있지만 사실 러시아도 아니고 헝가리와 비슷하다고…

그럼 취중블로그 마치고 진짜 물러갑니다. 이젠 흑인아저씨가 뒤에서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군요. 참, 이 배 정말 미친 배라서 벌써 술 취한 국적불명의 청소년들이 객실 복도에서 노래부르고 물구나무서서 보드카 원샷하기 경쟁도 하고…

 by bluexmas | 2008/09/06 05:00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nippang at 2008/09/06 05:10 

배 위에서라니~ 유리병에 담긴 편지가 도착한 것 같아요. 유리병은 갓 비운 와인병. ^^ 여행내내 건강하시기를.

 Commented by 1984 at 2008/09/06 10:30 

배에 타는 것도 꽤 재밌죠? 한국에서는 그런 큰 배 탈 일이 별로 없어서, 부럽네요.

 Commented at 2008/09/06 22: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07 09:49 

nippang님: 그러나 사실 술을 다 못 비웠어요. 한 병 다 마시려니 간만에 버겁던데요? 그리고 너무 싸구려라 맛도 없었어요.

1984님: 누군가 갑판에 토한 걸 보고는 참 왜들 이렇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들 술과 담배로 지금 바로 죽고 싶은 것 같은 분위기던데요.

비공개님: 사실은 육두문자로 도배된 보다 개인적인 여행기를 밤마다 쓰고 있어요. 이건 그냥 시간 날때 올리는 거죠…

 Commented at 2008/09/07 19: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08 08:37 

네, 어느 정도는 pg-13판으로 기록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