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도날드가 선사한 소외감
가뜩이나 3류 글만 써 올려대는 블로근데 ‘당신과 도날드가 선사한 소외감’ 이라니, 참으로 3류스럽네요. 느낌이 꼭 혼외정사 얘기가 등뼈를 이루는 초 싸구려 남녀상열지사 이야기일 확률이 높은데, 정말 그런가요? 여염집의 조신한 조강지처가 미국에서 온 도날드랑 눈 맞아서 낭군님을 낼름 버리고 놀아나는 뭐 그런 이야기, 맞죠?
그 나불대는 입 좀 닥치고 일단 좀 들으면 안 될까요? 제가 그랬죠, 좋은 청자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네, 어련하시겠어요-_-;;; 하여간 닥치고 들어드리기로 하죠.
중학교 3학년 때였나? 그 왜 매년 어버이날을 맞아서 부모님께 편지쓰기, 뭐 그런 초 엎드려 절 받기 행사 같은 것 있잖아요. 뭐 그때는 그래도 지금처럼 세상에 비뚤어진 시각을 가지지 않고 착하고 순진하고, 또 순종적인 자세로 살던 중학생이라, 그 편지조차도 정말 진심으로 썼었거든요. 사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존칭을 쓴다는 의미로 어머니를 ‘당신’ 이라는 호칭으로 불렀었어요. 예를 들자면 뭐 편지 맨 끝에 ‘당신의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께요’ 뭐 이런 식이었겠죠. 있잖아요 왜… 사람들이랑 대화하는데 자기 부모님을 높여야 될 상황에 닥치면 ‘당신께서는…’ 뭐 이런 표현.
그런데요? 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얘긴데.
다 듣지도 않고 판단하는 나쁜 버릇은 여전하군요. 그런데 문제는, 주변에 앉아있던 녀석들이 어떻게 뒤져서 찾아 냈는지 편지를 내는 날 제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편지를 꺼내서 읽고는 그거를 가지고 놀려댔다는 거죠. “쟤는 엄마를 ‘당신’ 이라고 부른대, 이상해.”
그게 정말 이상한건가요?
그런 표현이 담긴 책이라고는 읽어보지 못했을 법한 무식한 놈들에게는 당연히 이상한 것이었겠죠? 그게 다수였으니 그냥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수 밖에. 물론 어머니는 편지 잘 받았다고 하셨죠. 주고 받는 사람들끼리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대체…
으음, 일단 당신에 관련된 얘기는 혼외정사랑은 별 상관없는게 확실해졌군요. 그럼 도날드는 혼외정사재미 좀 보는걸까요?
-_-;;; 그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얘긴데 그 때도 혼외정사가 장안의 트렌드였을까요?
앗, 그때라면 군부가 직접 나서서 혼외정사를 엄격히 통제했을수도 있겠는걸요. 아직도 간통죄가 성립되는 나라니까… 정말, 혼외정사하다 걸리면 거세라도 했을지 모를 노릇이에요. 그런 걸 주제로 글 써 볼 생각은 없는거에요? 그럼 3류 블로그가 조금은 사회성도 띄는 2류 블로그처럼 될지도 몰라요. 파워 블로거 되고 싶지 않아요? 막 방문객 백만 모였다고 이벤트도 걸고 설문조사도 하고 덧글도 백만개 달리고 그래서 밤 새워 덧덧글 달고… 왜 그 잘 나가는 블로거들 있잖아요. 나 같으면 한 번 해 볼 것 같은데.
그럼 하세요, 내 얘기 안 들을거면 난 1층에 내려가서 밀린 설겆이나 하고 자게… 내일도 야근해야 되니까요.
뭐 말 한 마디에 삐지는 건 여전하군요. 들어줄테니 어디 한 번 읊어보세요. 이왕이면 화끈한 도날드의 혼외정사 얘기로.
초등학교 4학년때였는데요, 1학년 때부터 3학년때까지 쭉 반장을 했던 애들 둘이 한 반에서 만났어요. 저하구요, 네, 지금 하는 꼬라지로 봐서는 믿기 어렵겠지만(-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지레 찔려서 -_-;;;), K라는 애가 있었죠. 뭐 무슨 경쟁의식 같은게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들 각자 잘난맛에 사는 싸가지 없는 어린애들이었던지라, 하루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했죠.
그게 뭔데요? 뭐 한 여자애를 놓고 싸웠다거나…
아니, 이 사람 왜 모든게 남녀상열지사 위주로 돌아간대요? 요즘 뭐 제대로 연애 못한지 좀 된걸까요?
아, 그게 좀…-_-;;; 하여간 계속 읊어주세요, 신경 끄시고.
어느날 아침이었나? 뭐 애들끼리 시덥잖은 수다를 떠는데, K가 그러는거에요. 미국 대통령이 ‘도날드’ 레이건이라고.
그거, ‘로날드’ 레이건 아니에요? 냉전시대, 레이거노믹스. 명바기노믹슨가 뭐 그런 용어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기자들도 참…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무혀니노믹스 뭐 이런 건 없었잖아요.
예전에 앞에 가던 자동차 범퍼에 ‘Cheney Bush’ 스티커 붙어있는 거 보고 저한테 ‘부시 이름이 체니야?’ 라고 물었던 사람도 있었어요,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저는 그때 롯데에서 나왔던 미니 돈까스에 집착하던 심각한 소아비만이었지만 그래도 미국의 대통령 이름이 ‘로날드’ 레이건 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날드가 아니고 로날드라고 그랬는데, 얘가 끝까지 우기는거에요…. 그러더니 주변에 있는 애들한테 다 물어보네. “도날드야, 로날드야?” 라구요. 근데 애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도날드라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에요? 나만 병신되고 말았지. 뭐 따지고 보면 미국대통령도 같이 병신된 셈이죠. 멀쩡한 로날드가 도날드 되고… 미키마우스 친구도 아닌데 이름이 왜 또 도날드야, 유치하게.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뭐 그 뒤로 아무일 없다가 그 해 말인가 바람처럼 불어오던 서울로의 전학 열풍에 휩싸인 K도 서울로 전학을 갔는데, 집에서 하는 송별잔치에 저는 안 불렀어요. “너 같이 얄미운 놈은 안 불러” 라는 4류 호랑이 선생님풍의 유치한 대사와 함께.
거 참 어린이로써 가슴 미어지는 소외감이었겠네요.
뭐 별로…애꾸눈 나라에서는 두 눈박이가 병신일잖아요. 그나저나 얘기는 끝인데 혼외정사라고는 눈꼽만큼도 안 섞인 얘기라서 실망이 좀 크겠네요. 원래 그런 종류의 얘기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뭐 당신같이 재미없게 사는 인간한테 뭘 바랬겠어요… 기대가 컸던 내 책임이지. 그나저나 그 “애꾸눈 나라에서는 두 눈 박이가 병신” 은 원래 당신 대사가 아니잖아요. 중학교때 미국에 갔다가 정원외로 대학때 돌아온 초등동창 P의 대사 아니었나요? 그 ‘선형대 수학?’
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당신도 기억력이 쓸데없이 만만치 않군요. 그 얘기도 좀 기니까 다음 기회를 노려보죠. 미리 실망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거기에도 혼외정사 얘기는 없어요.
혹시 알아요? 거기 등장인물에 관련된 누군가가 알고보니 혼외정사의 대가였는지도… 그나저나 궁금한게,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로 이루어진건데 왜 큰 따옴표를 안 쓰는거죠? 갑자기 궁금하네.
그건 말이죠, 집에 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큰 따옴표를 쓰면 “대화가 너무 큰 목소리로 이루어지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요.”
정말 그런가요? 큰 따옴표를 쓰면 “대화가 너무 큰 목소리로 이루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 좀 낮추면 안돼요? 나보다 목소리 큰 사람은 또 오랫만에 처음 보네.”
알았어요. 그런데 참고 묵묵히 들어주면 언젠가는 “혼외정사” 얘기도 한 번 쯤 못 이기는 척 해 줄 거죠? ^^
“………!”
# by bluexmas | 2008/08/22 13:00 | —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1/05/08 23:25
… 이런 종류의 상황은 원래 기쁘고 즐거워야 할 삶을 참 피곤하게 만든다. 페스토는 페스코고, 페스토는 페스토다. 때려 죽여도. 또한 때려 죽여도 로날드 레이건이지, 도날드 레이건이 아니란 말이다. 이게 무슨 ‘그래도 지구는 돈다’도 아니고 참. 오늘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잤다. 깨어보니 네 시였다.   … more
회사에 이 글을 제출하시면 야근을 줄여줄 듯. 쉬셔야 합니다. :-p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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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1님: 그렇죠. 퇴근이 없는 건 좀 괴롭죠… 처음 취직해서, 난생 처음 해보는 큰 프로젝트를 이해하지 못해서 퇴근하고 학교 다닐때처럼 도면을 놓고 공부를 했었어요. 그걸 이해못하면 내가 일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휴가는 너무 길게 떠날거라 팀원들에게 조금은 미안해요. 그 사이에 아주 큰 마감이…
참, 큰 따옴표는 사실, 원래 저 대화를 전부 큰 따옴표로 따려다가 생각해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던거죠. 사실 전 대화체를 쓰는데 굉장히 약해요. 낯설어하거든요.
nippang님: 아픔을 겪으셨군요, 저처럼^^ 진리는 언제나 환영받지는 않는 법이라고… 이자벨 아자니랑 다니엘 데이 루이스 사이에 아이가 있지 않나요? 커서 명배우가 될 듯…
비공개 2님: 수박에 간장 찍어 먹는 얘기, 들어본 적 없으세요? 제주도에서 그렇게 한다는데 시도해보시지… 칼퇴근은, 일곱시에 했으므로 그럭저럭 그렇다고 쳐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비공개 3님: 네, 저 진심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하하… 좋은 것도 진심, 싫은 것도 진심…진심이 아닌 관계는 회사로 한정시키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서는 늘 진심이고 싶은 유치하면서도 이루기 어려운 바램이 있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말하고, 싫어하는 아니면 싫어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말 안 하는…
알고보면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진 존재인데, 참 돌아보면 부를 이름도 또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갈 수록 줄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전 요즘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너무 없어서 좀 답답해요. 요즘은 제 친구들이 결혼을 해서 아빠가 되었는데, 후배가 처가 되거나 한 경우에는 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더라구요. 전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아이 엄마를 ‘##엄마’ 라고 부르고 싶지 않거든요. 그건 그 사람이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결국 그냥 누구의 엄마가 된 것이니까…. 그러나 또 그냥 ##야- 라고 이름을 부르자니 그것도 참 다들 어른인 마당에 맞는지 모르겠고… 나이 먹으면 또 이런 고민이 생기더라구요(그러나 십년, 십 오년 지기의 아이를 보는 기분은 참 흐뭇하죠^^).
참, 이번 주말에는 쉴거에요. 영화도 안 보고 장도 별로 볼 필요도 없고 음식도 만들일 별로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