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법 세계로부터의 환상 (1): 바다를 건널 뻔한 베이글
600번째 글.
지난 주 금요일, 아침으로 누가 Einstein Brothers Bagel을 가져왔길래 생각이 나서 몇 개를 집어서는 랩으로 꽁꽁 싸서 집에 가져왔어요. 베이글이 며칠이나 버티는지 보려구요. 계속해서 기억이 나더라구요. 서울에 가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이 가게의 Bagel이라고 얘기했던게. 여기에서 비행기 타기 전날 사서 비행기 타고 오는데 하루, 도착하면 서울은 저녁때니까 그 날 만나기는 좀 그렇고 그 다음날 저녁쯤에 만날 수 있다고 해도적어도 사흘, 넉넉히 나흘은 걸리니까 그때까지 이 녀석들이 버텨준다면 다음 달에 서울에 갈 때 데려가려고 했던거죠.
그러나 이제는 그 녀석들이 며칠이나 버틸 수 있는지 아는게 별 의미가 없어졌네요…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히 되짚어 생각해보면 또 나를 괴롭힐만한 기억의 파편들이 의식의 바다 위로 다시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더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에, 그냥 그 모든 걸 이 이진법의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모자란 의사소통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당분간은 동요없이 지내고 싶네요. 그 세계에서는 이런 일들이 물리적인 세계에서보다 더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 정도는 초라한 핑게로 삼고 싶어서 늘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그럼 베이글을 못 주게 되어서 아쉽지만, 또 언젠가 다른 기회가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지도 모르죠.
잘 지내요.
# by bluexmas | 2008/08/17 15:21 | —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8/08/20 12: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20 12:15
그렇지 않아도 덧글을 지우셨길래, 혹시 제가 마음 불편하게 해 드린게 있었나, 살짝 걱정했었어요. 지금까지 3류로 흐른 분위기에 맞게 예상되는 결말도 사실은 3류랍니다. 떠나기 전에 쓸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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