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도, 자아방어기제
물론 여기에서의 ‘자아방어기제’란 내 멋대로 완전히 가져다 붙인 쓰임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내 안에 있는 어떤 자기 보호/방어를 위한 메카니즘 같은 것들이 때로는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마저 마음껏 못하게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옛날옛적 그 우화의 신포도와 같은 것.
그러나 삶이나 사람이 어떻게 신포도처럼 취급될 수 있겠나. 알고보면 껍질과 과육, 그리고 씨의 세 가지 물리적인 요소로 구성된 포도알과 수천수만종류의 신경과 핏줄과 지방과 뼈와… 온갖 것들이 한데 뭉쳐 이루어진 사람은 그 존재의 복합성이 비교불가한 존재인 것을. 그러므로 가끔 생각한다. 그냥 시어빠졌을 것 같은 모양이었어도, 또 시큼한 냄새가 코를 싸쥐게 할 정도라도 그냥 눈 딱 감고 손을 뻗어보았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손이 닿지 않는다면 사다리라도 가져가다 꾹꾹 밟고 올라서서 닿도록 애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뜨겁게 열심히 흐르던 피가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다. 나로서는 단 한 번 사는 삶인데, 라는 말이 올가미가 되어 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그 정도가 지나쳐서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그 엉터리같은 자아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방어기제는 일단 상황을 비난하고, 신포도를 비난하기 이전에 나를 비난하고, 그것으로도 진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으로써 신포도를 비난한다. 그리하여 선택을 했어도 남는 것은 입안에 그득한 시큼한 맛 뿐이라는 사실을 억지로 주입시킨다. 나는 언제나 나를 비난하는 단계에서 그 다시 말하지만 엉터리같은 자아방어기제의 작동을 마치려 애쓴다. 많은 경우 신포도에게는 잘못이 없으니까. 사실 그 포도는 정말 단 1%도 시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냥 높이 달려 있었을 뿐인데 160cm의 부친으로 인해 175cm ‘밖에’ 되지 못한 다리 짧은 토끼가 닿지 못한 것일뿐일지도 모르니까.
결국은 내 다리가 짧은게 죄였다. 그러니까 저 ‘자아방어’ 기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지만 그 원리는 자아비난이라는, 상당히 모순스러운 구조를 지니고서도 잘만 돌아간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를 비난하다니, 이건 정말 신포도보다 더 시어빠진 현실의 가장 모순된 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늘도 멀쩡한 듯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에라도 감사하는 수 밖에. 그냥 숨쉬는 건 순수한 생물학적이면서도 기계적인 행위이며 메카니즘… 의식하지 않으려 애쓴다면, 당신, 두 발을 땅에 대고 공기를 내쉬고 들여마시면서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거다. 신포도의 기억 따위를 가슴가득 품고서도. 그래서 행복하다고?
# by bluexmas | 2008/08/12 14:51 | Life | 트랙백 | 덧글(7)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아.. 우울하다;;
비공개 1님: ^^ 비공개님이 왜 뜨끔하세요? 히히
비공개 2님: 저에게는 습관처럼 분발의 펌프가 되는데 백에 하나 둘 넘기기 너무 어려운 것들이 있더라구요.
샤인님: 우울해하지 마세요, 알고보면 좋은 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