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기억

나에게도 당나귀의 그것을 닮아가는 임금님의 귀 같은 비밀이 있다. 어떤 기억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라고 얘기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거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말할 수 없는 기억이다.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말하면 내가 초라하게 보일 수 있으니까. 해가 거듭될 수록 아무 것도,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얼굴 두꺼운 사람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나지만 지금의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간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기억일 수록 쉽게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지니고 산다, 그러나 간직하지는 않는다. 간직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버거운 기억이다. 당시에도 믿지도 않았지만, 상처를 감싸준다고 말한 사람이 오히려 거기에 소금을 바르고 달아난 격이니까. 그러나 미워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냥 나를 위해서.

며칠 전에 이상한 메일을 받았다. 결국 스팸이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그 주소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아침 나는 몽롱한 정신에 커피를 샤워하듯 목구멍에 쏟아붓고 있다가 정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그 우스웠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냥 속으로만 웃었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 노래를 하루 종일 듣고 있었다. 노래는 처절했다. 누구한테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꼭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들을 사람이 겪을 괴로움을 생각해서라도 이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대나무숲이나 그 숲을 닮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를 내며 흔들리지만 스러지지 않는 숲이 있다면, 더 나아가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데에도 아주 능한 사람인데. 그때 그렇게 감사했던 것처럼.

 by bluexmas | 2008/08/08 12:05 | Life | 트랙백 | 덧글(7)

 Commented at 2008/08/08 12: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8/08 16: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모조 at 2008/08/10 02:44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내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군가에게 거부당하거나 배신당하거나 상처를 받거나…그런 기억은 참 질기게 살아남는 것 같아요. 분명 나도 누군가에게 몹쓸 짓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기억은 사라지고 말입니다.

가끔 한계에 다다를 때 누군가 그 압력을 빼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10 13:59 

비공개 1님: 비밀을 좀 간직하고 살아야 재미있는게 또 삶이죠^^ 그러므로 말 안 해도 될 듯…

비공개 2님: 그러게요, 그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면 또 어떨까 싶어요.

모조님: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사는게 사는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해요. 전 운이 없게도 남에게 저지른 나쁜 짓들마저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전 아직도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요, 잃어본 적은 없지만 품고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느끼고 있죠. 그래서 사는게 더 힘들어지는 것일지도.

 Commented by 모조 at 2008/08/10 14:54  

저도 사실 희망을 갖지 않는 척 하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8/11 12:04 

이야기를 해버려서 편할수도 있지만, 아 내가 그 이야기를 왜 했더라 하고 그 사람을 계속 보는것이 힘들수도 있을거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11 12:51 

모조님: 그럴지도 모르죠, 누군가한테 그런 얘기하면 자꾸 비웃어서… 비웃는게 정상인지 희망을 가지는게 정상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그러나 비웃는게 정말 정상인지는 참…

blackout님: 누구에게 얘기하는가가 관건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