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ur Ros: Heima

사실 시규어 로스에 관심을 가져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업데이트를 1년에 다섯번 정도 하는 친구의 블로그에서 이 DVD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바로 그 순간에 주문을 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DVD를 돌려보고 있었는데, 때때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DVD는 그냥 전체가 감동의 물결이다, 그러나 남들이 다 하는 얘기처럼 세계적으로 잘 나가게 된 밴드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문화의 손길이 잘 안 닿는 동네를 골라 다니면서 예고도 없고 돈도 안 받는 공연을 했다, 라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 감동을 느꼈는데 그 감동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냐, 라는 생각을 시간을 들여가면서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리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상황은 내가 있는 공간을 내가 원하는 종류의 것으로 채울 수 없을때다. 그러니까 사람이 미친듯이 많은 토요일 강남역 같은 동네엘 가게 되더라도 이어폰만 꽂고 있으면 조금 너그러운 인간인 척 할 수 있는게 나라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소리로써 나는 세상으로부터 내가 원하는만큼 나를 격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어폰을 꽂는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적어도 숨막혀 죽지 않을 만큼은.

말하는 나도 지겹지만 그 남들 안 가는 동네에 대한 얘기를 딱 한 번만 더 하기로 하자. 두 시간에 가까운 DVD에서, 그들이 공연을 하는 곳은 요즘 세상에서 공연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보이는 공간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허허벌판이니까, 그런 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때로는 무대도 없이 무슨 버려진 외딴 집 앞에서 풍금따위를 놓고도 연주를 한다.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내는 음악소리와는 단 한 번도 살을 섞어본 적이 없었을 것 같은 자연을 채운 공기는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거의 처음일 것 같은 소리와의 조우에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자기 몸을 내어준다.  그렇다면 그들이 노래하는 주위로 펼쳐진 이 자연이, 그리고 그 자연을 채운 공기가 진정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소리에 낯설음을 덜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시규어 로스가 빚어내는 이 소리가 진정 자연을 닮은 것인지, DVD를 계속해서 보고 있다보면 헛갈리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DVD 이전에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본 일이 없다. 처음 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주변의 음악듣는 친구들이 거의 환장하다시피 이들을 좋아할때도, 나는 이들이 그저 전위적인 음악을 연주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슬란드어도 장난 아닌데, 지어낸 언어라니! 그것만으로도 무식한 나에게는 거리를 두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무식할 따름이었다. DVD를 계속해서 돌려보면서 나는 내 무식함에 부끄러워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느낌을 가진 음악소리는 가장 자연같아 보이는 자연의 공기와 살을 섞어가며 감동을 느끼기에는 조금 긴 시간동안 계속해서 따뜻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DVD를 보면서 느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by bluexmas | 2008/07/20 16:43 | Music | 트랙백 | 덧글(10)

 Commented by nippang at 2008/07/20 19:09 

시규어 로스 정말 좋아해요. 겨울산책하면서 들으면 눈물로 안구세척…

 Commented by shin at 2008/07/22 00:08  

“처음 이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주변의 음악듣는 친구들이 거의 환장하다시피 이들을 좋아할때도, 나는 이들이 그저 전위적인 음악을 연주한다고 생각했다. 아이슬란드어도 장난 아닌데, 지어낸 언어라니! 그것만으로도 무식한 나에게는 거리를 두기에 충분했다.”-> 이거 완전 제 얘긴데 이렇게 완전 conversion을 하시다니…갑자기 궁금해지네요ㅡ.ㅡ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7/24 13:41 

nippang님: 새 앨범은 보다 발랄한 분위기에요. 마음에 들더라구요. 다른 앨범들도 사야겠어요.

shin님: 글쎄요… 그건 그냥 음악이 어때서가 아니라, 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어요. 노래를 좋아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다큐멘타리를 보면 누구라도 감동을 느낄거라고 생각해요. 꼭 한 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참, 블로그 가지고 계시면 다음에는 링크 남겨주세요, 찾아가게…

 Commented by shin at 2008/07/25 05:01  

앗 이렇게 말씀하시다니 저 여기 답글 처음 달았나 봅니다. 하도 오랫동안 들락거리면서 눈팅하고 있었어서 거의 의식하지 못했어요. 초면(저 혼자 구면..)에 뚱딴지같은 댓글 남겨드렸네요ㅡ.ㅡ 블로그 있긴 한데 이글루도 아니고 왜 있는지 잘 알수 없는 가끔 뜬금없이 노래 관련 혼자 낙서하는 블로그라 링크 남기기 민망해서 잘 안남겨요ㅡ.ㅡ; 암튼 고놈 다큐 꼭 기억해놨다 보겠슴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7/25 13:12 

그러셨군요. 저의 블로그에 눈팅하시는 분들이 많은 걸까요?T_T 답글이야 뭐 다 반가운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시규어 로스 다큐멘타리는 꼭 보시고, 종종 놀러와주세요^^

 Commented at 2008/07/25 13: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9/07/13 06: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7/13 22:52

그럼 아이슬랜드에 다녀오신건가요? 멋집니다. 아이슬랜드 국가 자체가 파산 위기라고 얼마전에 들은 것 같은데… 그래서 물가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하던가요? 음악 관련 글은 언제나 쓰고 싶은데 다른 종류의 글들에 밀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종종 찾아주세요^^

 Commented by Raye at 2010/05/01 00:58 

2004년인가에, 머스커닝햄 무용단 내한공연에 시규어로스가 같이 와서 생음악 반주를 해준적이 있었어요. 제가 본 최초이자 마지막 시규어로스 라이브공연이었답니다. ㅋㅋ 그런 식으로 봤던 공연이 욜라텡고 생음악 반주와 해양생물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이었죠.. 요즘엔 어떤 것도 썩 열광할 만한게 없는거 같아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5/01 01:02

아 저도 그 공연에 대해서 얘기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 듣고 싶은 음악이 없어서 좀 침체되고 있어요. 뭘 들으면 좋을까요? 욘시의 솔로 앨범도 몇 곡만 좋다가 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