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boy II (2008): 전편을 소멸시킨 속편

오매불망 기다려온 이 영화, 토요일 아침 극장으로 향하며 계속 과속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려고… 뭐 전편과 그 사이의 ‘판의 미로’, 그리고 그 영향을 엄청나게 받은 듯한 느낌을 주는 예고편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 나는 그저 Selma Blair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Legally Blonde나 Guy Thing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영화들에서 (나의 눈으로 볼때) 자기보다 덜 예쁜 여자 주인공들에게 밀리는 역할만을 맡았던 그녀, 그따위로 나아가는 자신의 커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헬보이 1편에서는 한을 품어 냉기 아닌 불을 품는 여자의 역을 맡았지만 사실 그 역할이 그렇게 두드러졌다고는 할 수 없는 Selma Blair는 이번 편에서 한층 더 성장한 역할을 맡았으니 과연 그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정말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좀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이겠지만.

사실 헬보이나 판의 미로 이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뭐 있기나 한가? Blade II? 음…), 단정짓기는 좀 이르지만 판의 미로는 그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생각을 했고, 기본적으로 신화적인 바탕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판의 미로와 비슷한 궤를 걸을 수 있는 헬보이가 2편에서는 얼마만큼 1편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줄지, 참으로 궁금했는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2편은 1편을 뛰어넘다 못해 소멸시킨 듯한 느낌을 준다.

뭐 아주 간단하게, 그리고 단세포적으로 묘사하자면 헬보이 2편은 ‘1편+판의 미로’ 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이 가지고 있는, 판의 미로에서 보여준 시각적인 상상력은 그 세기를 거의 파괴적인 수준까지 끌고 올라가면서 생각만큼 아주 재미있지 않았던 헬보이 1편의 액션영화로써의 측면이나 유머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냥 ‘2편이 그렇다’ 라고만 말하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이므로 사실 그렇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 보면, 2편에서는 그 무엇보다 1편에서 깔아준 영화의 전반적인 배경 멍석 위에 한층 더 발달된 등장인물들이 액션과 유머가 완전 범벅이 된 버라이어티 쇼를 벌인다는 느낌이 강하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1편에서는 맛보기에 불과했던 Liz Sherman(Selma Blair 분)이 자신의 불쇼 능력을 통제하게 되면서 조금 더 입체적이고 영화의 흐름에 깊이 관여하는 등장인물로, 거의 다시 태어난 듯한(물론 약간 과장을 하자면-)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늘 뭔가 뒤집어 쓰고만 나와서 잘 생긴 얼굴을 잘 안 보여주는 Doug Jones가 분장한 Abe Sapien 역시 1편에서보다 등장인물로써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뭐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괴물/요정/악마 등등이 출연 시간에 상관없이 전부 등장인물로써 입체적인 모습을 지니고 잣신의 색깔을 보여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진정 이 영화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감독의 시각적 상상력에 기대어 창조된 영화속의 세계는 정말 대단하다, 특히나 70 곱하기 70, 도합 4,900개의 시계태엽 금빛군단이 하나 둘씩 오랜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장면은 헬보이 일원이 잡입하는 뉴욕 브루클린 다리 밑의 트롤 시장의 풍경과 더불어 영화의 시각적인 백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말 영화로써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러한 영화속의 세계가 단지 볼거리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세계를 이루는 요소하나하나, 단 1초라도 등장하는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것처럼 존재적인 생동감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롤 시장의 장면에서 처음과 중간 단 5초 정도만 등장하는 생선 파는 요정마저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보니 정작 주인공에 대한 얘기는 꺼내놓지 않은 것 같은데, 론 펄만 정말 최고다, 특히 유머에서… 5월인가 개봉했던 아이언 맨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예전과는 다른 성격의 초영웅을 연기했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2편의 헬보이에게 밀린다는 느낌이다.

하여간 말이 길었는데, 다음 주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헬보이 2편은 1편을 소멸시킨 속편으로써 훌륭한 영화였다.

 by bluexmas | 2008/07/15 12:49 | Movi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monots at 2008/07/15 13:24 

국내에서는 9월에 개봉한다는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7/16 04:29 

1편도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주말에 볼걸 그랬네요~ 저도 셀마 블레어 좋아해요~ (안어울리는 성인코미디는 좀 그만 나와줬으면 했거든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7/16 13:13 

monots님: 9월에 개봉이라니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정말 잘 만든 영화라 여름 블럭버스터로 손색이 전혀 없는데…

blackout님: 보지 그러셨어요. 정말 재미있었는데… 셀마 블레어 저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