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 흉을 보려는 의도는 아닌데, 써야지 생각해보니 흉이 될 수도 있는 얘기: 근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어떤 분이 ‘블로거에 메이저 마이너가 어디 있냐’ 라는 주제의 글을 올리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꼼꼼히 읽지 않았다. 그러나 죄송스럽게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 분마저 나에게는 소위 말하는 메이저로 보였다. 나에게 감히 누가 어떻냐는 판단을 내리고 또 그걸 이런 데에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나 나름대로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메이저/마이저의 구분법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 하나는 공지사항이다. 예를 들어 ‘퍼 갈때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크리에이티브 2.0의 영향을…’ 과 같은 공지사항, 때로는 짧게 또 때로는 길게… 블로그의 주인은 그 글이 누군가에 의해 옮겨질거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그로 인해서 단지 쓰는 사람-읽는 사람의 관계보다 조금 더 수직성이 강조된 관계가 그 블로그에 형성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건 어떤 의미에서 추종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와도 조금 다르다. 영역과 규칙, 그것은 결국 권력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것이 이오공감 추천 백 명이든, 트랙백 사십 다섯개에 공감한다는 덧글이든, 그런 알량한 권력의 요소는 하나로 합쳐져 결국 영역과 규칙을 낳는다. 그리하여 메이저 블로거의 탄생. 하루 열 명 오는 블로거의 주인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누가 알기나 했을까? 그럼 사람이라면 ‘우리 블로거’ 라는 표현은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2. 우리 블로거? 난 그 ‘우리 블로거’ 와 같은 표현을 싫어한다. 내가 블로그라는 걸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블로그라는 걸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삶에서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와 내가 하나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팟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가 아이팟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와 내가 ‘우리 아이팟 유저’ 가 되는 세상인지 이제는 확언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아이팟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한 그렇게 사람을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져버린 세상이기 때문에 그 매개체 자체도 또 그 매개체로 인해 엮이는 것 자체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목요일마다 보라색 양말을 신는데, 그렇게 목요일마다 보라색 양말을 신는 사람들을 모아서 ‘우리 목요일마다 보라색 양말을 신는 사람들이’ 라고 말하면 나의 삶이 좀 더 윤택해지나? 내가 꼭 그 무리에 속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나? 블로고스피어? 난 거기에 발 들여놓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지구에서 사는 것만으로 삶이 피곤하지 않았던가.
3. 말하자면 이 블로거라는 것이 왜 사람의 특질을 나타내는 무엇인가가 되어야만 하냐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 가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 소개를 하면서 ‘…건축일하구요…블로거에요’ 라고 말해야 되나?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누군가 나를 다르게 보나? ‘저의 본업은 건축인데 블로거이기도 하구요, 주로 고디바 초콜렛하고 부산오뎅 심층리뷰 전문이에요’ 라고 말해서 누군가 나를 더 사랑해준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사람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가끔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취미 얘기가 나오면.
4. 책을 내야된다. 뭔가 이 블로그질의 끝에는 책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책이 막 나오나? 요즘 우리나라 책에 관심이 좀 뜸해져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책은 나온다. 부산오뎅을 500번 심층리뷰하다보면 책 한 권 찍어낼 거리가 생기고, 그럼 곧 대박을 꿈꾸는 눈먼 출판사가 접촉할 것도 같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알아…메이저 블로거도 아니고 부산오뎅 심층리뷰도 안 하는데. 오뎅 껍데기 사진은 찍어서 뭐하냐구… 아따, 이 부산오뎅 포장지에 찍힌 마스코트 물고기는 눈알도 신선해보이는게 역시 정통표방 부산오뎅의 아우라가 풍기네요. 지느러미의 형상으로 보아 대구, 그러니까 이 오뎅의 주 원료로 판가름되는데 맛은 어떨지, 시식해보겠습니다~
누구는 좋겠다, 오뎅 하나에도 그렇게 많은 의미를 줘가면서 살 수 있어서. 눈썰미 높은 삶에 경의를 표하는 바.
5. 난 거의 대부분의 음식블로그를 싫어한다. 일단 너무 많다. 애초에 유명한 음식 평론가도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똑같은 일하는 소위 블로거라는 사람들이 대체 몇 명이나 되는지, 다들 뉴욕 레스토랑 찾아다니면서 먹고 또 먹고 글 쓰고 또 쓰고… 어떤 수준이 지나면 이건 무슨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끼는 삶의 기쁨을 나누는 정도를 훌쩍 벗어나서 비만을 부르는 식탐의 전주곡이되어버린다. 밥은 하루에 세 번만 먹으면 배부르다. 그것도 매끼 배부르게 먹으면 배터진다. 맨날 식당 가서 먹을 돈은 다들 있나? 맨날 무슨 특별한 레시피, 특별한 레시피 타령들 하는데 잘 나가는 음식 블로거 한 사람의 레시피만 만들어 먹어도 평생 먹을 음식 다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물어보고 싶다, 음식 블로그는 왜 꾸려들 나가시는 거냐고. 책 내고 싶어서? 내가 먹는 음식만으로 책 한 권 내면 아마 레피시 백 개 가운데 일흔 개 이상이 손만 있으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물 말은 밥이나 치즈만 끼워 넣고 토스터에 5분간 구운 통밀빵, 그것도 아니면 고추장에 비빈 어제 먹다 남은 스파게티, 뭐 이런 음식들을 위한 것들이겠지, 내가 늘상 먹는게 그러니까.
6. 블로그에 찾아와 주시는 어떤 분 블로그에 덧글을 남겼더니, 덧글을 남겨주셔서 영광이라는 덧글을 다셨다. 100% 농담이셨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쪽팔렸다. 내가 무슨 메이저 블로거라도 되나? 내 덧글이 무슨 성은이라도 되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블로그질하다가 사람 많이 모인다고 공지사항 만들고 싶지도 않고 이글루스 피플같은데 될 것 같지도 않지만, 되었다고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책 다섯 권 판 다섯 장 블로그 다섯 군데 같은 것 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 멍청한 싸이 투멤하고 다른게 뭐가 있는데? 이제 그것도 피플 남, 여로 나눠서 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왜 더 자주 사람들 안 올리나 모르겠다. 올라가고 싶은 사람 많을텐데. 어쨌든 말이 길어졌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리고 또 그래서 순진했던 옛시절 다셨던 성당에서 가장 즐겨불렀단 성가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가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누군가 생각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 by bluexmas | 2008/07/11 12:20 | Life | 트랙백 | 덧글(6)
소통이 블로그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믿는데 bluxmas님과는 그 부분이 거의 없다가 처음 생겼거든요. 그 점이 영광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물론 성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의도하지 않게 쪽팔리게 한 점은 유감이네요.
그리고 전 메이저 블로거의 댓글에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bluxmas님 블로그가 제가 보기에는 ‘메이저 블로그’입니다.
뭔가 다른 고민도 있으신듯..? (아닌가..ㅎ)
전..뭐..블로깅을 하지만 블로그가 뭔지도 몰라요.
그냥 일상의 하나로 즐기는 정도?
전 시장통같은 메이저 블로그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좀 한적해야 맛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