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

짐작하기를-‘ 로 시작되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메일도 아니고 편지… 그러니까 어젯밤 자정무렵. 써야 될 편지가 있었다, 두 통이었는데 하나는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짐작하기를’ 로, 나머지 하나는 ‘I kind of figure out that it would be funny to say-‘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손글씨의 속도가 더 이상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된 지금, 손으로 쓰는 편지는 정말 한 달 이상 묵은 내압으로부터 재촉당하기 이전에는 쓰지 않게된지 오래다. 그러나 벌써 한 달이 넘었고, 나는 쓸 수 밖에 없었다. 왜 자정무렵에서야 쓰기 시작했겠나… 일찍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던 저녁, 그 시간이 될 때까지도 나는 내압의 외침을 부러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 목덜미로 떨어지는 습하고 뜨거운 숨결을 느꼈던 순간이. 으응, 여름이구나, 7월이니까. 그러나 5월 말도 되기 훨씬 전에 찾아와 철이른 고통을 안겨준 녀석에게 다 늦은 7월에 놀란 모습을 보여줘야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무슨 서울이나 뉴욕처럼 윗쪽에 자리잡은 동네도 아닌데… 있잖아, 나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이 편지들을 다 써야 되니까 시간 있으면 내일 다시 찾아오는게 어떨까.지금 쓰고 있는 펜이 수성이라서, 땀이라도 떨어진다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되거든. 디지탈 시대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걸 다 마무리지어야만 될 것 같아. 나는 이런 편지를 쓸 때는 수정액도 쓰지 않는 사람이라서… 내일은 야근하고 열 한시쯤이면 집에 돌아올테니 아예 열 시 반쯤부터 기다리고 있든지.

바야흐로 여름의 공식적인 시작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압을 무시하면서까지 쓰지 않았던 편지를 다 쓰고 나면 억지로라도 기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계절, 여름의 시작.

 by bluexmas | 2008/07/03 14:07 | Life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笑兒 at 2008/07/03 22:57 

저도 가끔, 이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두서없는 말들을 주저리- 늘어놓으면서 근황 내지는 왠지 괜히 진지한 이야기를 편지로 누군가한테 보내고 싶어질때가 있답니다 ^^;; 근데..결국 보낼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쓰다가 말아버리는, 그런 편지들이 서랍속에 수두룩 한데 -_ㅠ 손으로 쓰는 편지는, 타이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어요.

어떤 편지인지는 몰라도..무사히 다 쓰셨기를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7/04 11:47 

^^ 편지 썼을까요, 안 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