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Flowers
…하얀 꽃은 원래부터 하앴던 것도 아니고, 원해서 그 색을 타고 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그/그녀는 좀 더 아름다운 색을 빚어내기 위해 자신을 너무 많이 태운 나머지 피어날 즈음에 재가 되었기 때문에 하얀 색을 가진채 꽃망울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색으로 종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조물주에게 허락받은 꽃이 하얀색으로 피어난 것은 천형과도 같은 아픔이지만, 그래도 꽃은 어느 이름모를 거리의 골목길 담벼락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피어났다가, 새벽 이슬이 너무나도 차가워져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어느 11월말의 초겨울 새벽녘에 조용히 그 꿈,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꿈을 접은채 색맹인들의 천국에 다시 피어나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단지 무채색이라는 이유로 거들떠보지 않음으로써 편견이라는 이름을 지닌 태만함을 남용하는 죄를 짓곤한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이 계절의 틈새에도 그저 하얗게 피어날 수 밖에 없는 꽃은 그 이름없는 거리의 골목길 담벼락에 수줍게 피어있을 것이다. 새벽 이슬이 그 하얀 꽃의 눈물은 아니겠지만, 눈꼽만큼의 따뜻함을 늘 지니고 사는 누군가가 그 처량한 꽃을 따뜻하게 품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지니고 사는 것이 비단 나 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Especially When이라고, 아는 동생의 밴드가 있다. 단지 아는 사람이 해서가 아니라 노래가 좋아서 꽤나 좋아하는 밴드였는데 두 장의 EP만 내고 활동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 글은 3년 전인가, 두 번째 EP의 마지막 곡 White Flowers를 계속 듣다가 무심결에 쓴 글이다. 그리고 꽃은… 집 앞에 그냥 심어주는 나무에서 피는 꽃인데 내가 아는 하얀 꽃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초라하게 피는 듯, 사진에서 봐도 알겠지만 꽃의 절반은 하얗지도 않다. 실제로 어떤 하얀 꽃을 생각하면서 쓴 글이 아닌데, 작년인가 이 꽃이 이렇게 초라한 몰골로 피어있는 걸 보고는 예전에 썼던 이 글과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을 기다렸다, 이 꽃이 다시 필 때까지.
언제나 돌려서 쓰는 버릇이 있어서 쓸 때는 나중에 기억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대체 무슨 생각과 기분으로 그런 글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글에 관련된 일들은 아주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런 까닭에 글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올려야 될지 말아야 될지 생각을 좀 했다. 그러나 꽃이 지면 또 1년을 기다려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 by bluexmas | 2008/06/02 12:51 | —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