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토요일 아침

대학 4학년 가을이었나, 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건설회사 몇 군데의 공채에 지원했다. 다니지도 않을 걸 왜 지원해서 진짜로 취직할 사람들 자리를 뺏냐는 비난 비슷한 싫은 소리도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나라는 인간을 시장에 내어 놓으면 팔릴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뭐 원서를 내고 면접을 하러 다니고… 어찌어찌해서 모 그룹의 건설계열사에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에 그 최종합격자들을 모아놓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과장 또는 부장급 직원이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여러분들 여기까지 뽑느라고 엄청나게 바빴는데 그래도 이런 일로 새벽까지 일하고 소주 한 잔 마시면 보람을 느낀다고…

사실 그 때는 그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뭐 세상에 많고 많은 즐거움이 있고 또 가족도 있을텐데 새벽까지 일하고 고작 소주로 스트레스 풀고 보람을 느낀다니 저 아저씨도 참…

그러나 내가 이제 아저씨며 직장인이 되고 나니 그 아저씨한테 그런 생각을 했던게 미안해지려고 한다. 왜? 돌아보면 나도 그렇게 다른 것 같지 않으니까. 물론, 아직도 나에게는 많고 많은 즐거운 일들이 있(는 것도 같)고 뭐 가족은 없지만, 막상 시간에 쫓기는 일을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마치고 나면 일단 술 생각부터 나니까.

뭐 돌아보고 나면 매주 이번 주가 가장 힘들었던 주였노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번 주는 정말 피곤하더라. 뭐 여행 갔다와서도 그렇지만 닷새 동안 해야 될 일들을 나흘 동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게다가 이 글에서 언급했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게 지금까지 했던 것들과는 상상을 초월하게 어려워서 가끔은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때도 있다. 아니면 오늘 뭔가를 해서 마쳤는데 다음날 회사에 와서 책상에 앉으면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거나, 건물 전체의 그림이 머릿 속에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거나…

하여간, 어제도 일곱시까지 월요일 회의에 필요하다는 자료를 만들어서 넘기고는 운동도 건너뛰고 바에 갔는데, 앉아 있기도 버거워서 금방 일어나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와서는 냉장고에 있는 각종 단백질(연어, 쇠고기..)들을 불에 구워서 안주삼아 포도주를 물-진짜 물처럼 넘어가는 녀석이 있더라니까-처럼 마시고는 바로 침대로… 자명종을 안 꺼놓고 자서 그 소리에 깨니 아침 여섯시더라. 더 자고 싶었지만 갑자기 생각이 많아져서 더 잘 수가 없었다.

오늘은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다. 토요일, 아니 주말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난게 대체 언제였더라?

 by bluexmas | 2008/05/31 21:21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