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

언제나 일요일 이맘때 쯤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그렇다고 딱히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는 소파 같은데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니 눈이 심심하다. 그래서 뭔가를 계속해서 뒤적거리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컴퓨터를 끄고 잠을 청하자니 그것도 이상하게 조금 아쉽다. 잠이 안 와서? 잠은 벌써 저녁을 먹은 여덟시쯤 부터 목덜미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잠을 쫓아내는 순간이다. 지금은 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꽤 많은 일요일의 이 시간이면 내일이 오는게 두렵고 지긋지긋해서 잠을 이루고 싶지 않은 때가 꽤 많았다. 목요일만 되면 주말에는 뭔가 새로운 걸 해 보겠노라고 마음을 먹어보지만, 정작 주말이 오면 그동안 하던 것들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원하는 것은 많고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은 어떻게 이뤄야 할지 방법도 대충 알 것 같은데, 정작 손을 대기 시작하면 너무 더디게 진행된다. 그래서 결국 이 시간이면 이렇게 앉아 있게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나를 이런 순간으로 이끄는 감정은 아쉬움이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 아니면 해야만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하지 못해서 생긴 아쉬움이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만드는지, 그 관계를 아주 정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저러나, 결국 이 시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게 된다. 그나마 오늘은 빨래를 다 개어서 옷장에 넣어놨으니 편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기 직전에 하는 것은 늘 빨래를 개는 것이어왔다, 아주 오랫동안…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빨래를 개면서 늘 혼자 짜증을 내어왔다. 이렇게 혼자 내는 짜증은 본래 짜증의 속성과는 아주 정 반대로 속삭임과도 같다. 그게 싫어서 밖으로라도 내 뱉을라치면 결국에는 혼잣말 정도가 되고 만다. 나는 혼잣말보다는 속삭임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대부분의 경우 그냥 속으로 삭히고 만다. 아직까지 아무와도 속삭임과 같은 짜증을 부려봤다고 얘기해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아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 나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 생각해보니 이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막을 내렸다, 지금 이렇게 뭔가를 쓰고 있으니까. 이건 정확하게 짜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삭임도 아니고, 혼잣말은 더더욱 아니다.

고요함이 비명을 지르며 흘러가는, 그런 밤이다.

 by bluexmas | 2008/05/19 14:02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