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컴퓨터,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다 새 컴퓨터를 포맷했다. 딸려 나온 500기가짜리 드라이브가 한 덩어리라서, 새로 파티션을 나누고 포맷을 한 뒤, 옛날 컴퓨터에 담겨 있는 것들을 옮겨 담아야 되기 때문에 벌써 시작된 이번 주말은 그렇게 쉬는 그것이 될 것 같지 않다. 하여간, XP까지를 다루던 서툰 솜씨로, 부팅디스크를 넣고 다시 윈도우를 깔면 그 과정에서 파티션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는데 몇 번을 다시 해도 그런 메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제서야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스타에선 그렇게 하지 않고도 파티션을 나눌 수 있다고… 그러니까 괜히 포맷을 한 셈이다. 역시 성질 급한 건 이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썼던 컴퓨터는 2002년 미국에 올 때 조립해서 가져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여기 와서 사는게 훨씬 나았을텐데, 아는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사 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학교 근처에 살면서 대학원에 다니는 친구들 도움을 받아 하드웨어쪽도, 그리고 소프트웨어쪽도 도움을 받곤 했었는데, 이젠 그 친구들이 없는 동네에 가니까 나 혼자 이런 것들을 해결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친구를 불러 말하자면 일대일 강습을 받아 컴퓨터를 조립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는 그때까지만 해도 알고 지냈던 눈먼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본체가 딱 맞게 들어가는 가방을 구해서는 손에 들고 비행기에 타서 아틀란타까지 들고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한 바보짓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친구에게 열심히 배웠지만, 그 이후로 컴퓨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할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실은 덩치가 큰 PC 따위 다시는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지금까지 써 온게 PC인데다가 직업이 시각적인 정보를 생산하는 종류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학교 및 회사에서의 작업물들을 계속 보관하고 또 필요한 용도에 쓰기 위해서라도 PC는 계속해서 나의 컴퓨터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비스타는 일단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실망스럽다. 너무 번잡스럽다고나 할까… 어쨌든 꼭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깔고, 꼭 필요한 용도가 아니라면 이 컴퓨터는 훌륭한 사양과 엄청난 모니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겐 2안이 있고, 그 2안이라는 것이 지금 미국 대륙을 횡단해 내 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몬타나로부터 여기까지, 그 긴 여정을 거쳐.
# by bluexmas | 2008/05/10 22:58 | Life | 트랙백 | 덧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