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사실은 너무 대충 읽어서 이렇게 읽고 뭐라고 얘기해도 돼?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무시할 수가 없는데, 뭐 아무렴 어떻겠어요. 내가 돈주고 사서 읽고 느낀대로 얘기하겠다는데…
저라는 사람이 태만하다 싶을 정도로 각종 이념이나 주의 따위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작가가 마치 사람의 얘기를 하고 싶은 것처럼 각종 등장인물들을 내세우고 그 등장인물로 하여금 참으로 쉴 새없이 순수한 자기 생각인지 아니면 사회 이념의 산물인지도 모를 대사를 읊게 만들지만, 궁극적으로 그들 모두는 작가가 그려내고 싶었던 시대와 이념을 비춰내는 환등기의 부속과 같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소설의 전부가 사람으로 가득찬 것 같지만, 읽고 나면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겠죠. 거기에다가 그 많은 사람들을 부속으로 그려낸 시대와 이념 역시 읽을 때면 언뜻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 너무 많이 회자되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존재자체로 불감증을 안겨주는 것들이더라구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벌어졌던 일들의 의미가 평가절하되어도 상관없거나,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너무 많이 들었는데 또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라고 살짝 물어보고 싶은 것이겠죠. 사실은 표지의 디자인과 제목이 관심을 끌어서 집어온 책이지 작가나 내용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제 책임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내용인지 알았다면 굳이 사서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여간 책을 읽으면서 저는 주인공과 그 여자친구의 사랑이 어떻게 펼쳐질까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거창한 사회와 이념에 휩쓸려 책의 말미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을 보니 이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그렇게 사회와 이념에 파묻혀 사랑도 제대로 못했었나보다, 라는 안타까운 기분이 다 들더라구요. 하여간 작가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시대가 묻어난 사연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의 입으로써 우리가 거쳐온 사회를 말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다들 너무 어려운 시대를 거쳐오다 보니 입을 열때는 개인이 있었지만, 입을 닫을 때쯤엔 그 개인이 사라진, 그런 느낌이에요. 그러고 보니 참 다들 외로웠겠네요, 그가 누구든지 간에.
개인적으로 이렇게 어두운 시대를 다룬 소설 가운데 가장 좋아했던 건 198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임철우의 ‘붉은 방’ 이에요. 아버지는 매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사셨는데, 지금은 읽은 기억조차 지우고 싶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87)’ 을 빼 놓고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수상작이 아닌가 싶어요. 요즘은 제가 사지만, 감흥이 이상하게도 예전만 못하더군요.
# by bluexmas | 2008/04/28 13:02 | Book | 트랙백 | 덧글(9)
파폭에서 본문이 한두글자씩 삐져나와보여요
비공개 덧글입니다.
2002년인가? ‘뱀장어 스튜’를 지금까지 가장 좋아합니다 🙂
비공개님: 책 디자인 정말 훌륭한데, 요즘은 디자인이 책을 너무 앞질러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그냥 문고판에 덜렁 책 제목과 작가, 그리고 출판사 이름만 있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좋은 책은 표지 안쪽을 펼쳤을 때 알 수 있는거 아닐까 싶어요.
Josée님: 2002년 수상작은 안 읽어본 것 같아요. 뱀장어 스튜라니… 작년 것도 별로 재미없었던 기억이에요.
blackout님: 그래도 아버님께서 책 많이 보셨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