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냄새 나는 금요일
.정말 못 이기는 척하고 일요일 하루 정도는 출근하려고 마음 먹었었어요. 지금 도와주는 팀의 남자애 하나가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이렇게 시골 허허벌판 한 가운데에서 혼자 사는 저 같은 사람은 남의 얘기같이 않게 들리거든요. 나한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 911을 누르고 도움을 청하면 되겠지만, 그런 응급 상황에서도 저라는 사람은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이 허허벌판 어디쯤에 무슨 병원이 있는지도 저는 모르거든요. 다니는 병원도 회사 근처인데 여기에서는 차로 30분 이상 가야되고…
하여간, 그런 마음이었는데 대여섯명으로 이루어진 팀에서 맹장염 한 명, 휴가 두 명이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더라구요.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박힌 돌은 휴가, 굴러온 돌은 주말 출근? 남은 건 만만한 저하고 인도 여자애 하나… 그래, 제발 물어보지 말아줘, 그래야 니들이 안 물어봤으니까 안 나왔지, 라고 핑게나 대게… 일곱시 반까지 사무실에 머물렀는데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더라구요. 주말에 나올 수 있냐고. 뭐 다들 퇴근했으니까 물어볼 입도 같이 퇴근했겠지만.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교 체육관에 들러서 달리기를 하고는 그냥 집에 들어갈까, 라고 생각했는데 부는 바람이 너무 시원하더라구요. 그래서 종종 가는 학교 근처의 바에 들렀죠. 이렇게 집에 들어가기 싫기 때문에 들른 거라서 그냥 맥주 한 병만 빨리 마시고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오늘따라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너무 좋더라구요. 그 바는 Esquire 같은 잡지에서도 괜찮다고 기사를 내주는, 이런 시골 동네에서는 드문 그런 곳이었고 저도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가는 곳이었는데(게다가 바로 옆의 옷가게가 친구의 디자인이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주말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애들이 너무 노래를 못했거든요. 그러나 오늘은 너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맥주 세 병을 마시면서 노래를 계속 듣고 있었어요. 그렇게 생각보다 오래 앉아서 노래를 듣고는 차창을 활짝 열어놓고 달려 집에 돌아오는데, 불어오는 바람에서 여름 냄새가 풍겨오더라구요. 그 왜, 비가 내리기 전에 싸하게 풍기는 흙, 아니면 먼지 냄새 있잖아요. 거기에 나무나 풀의 냄새가 섞여서 들어온다면, 이제 이 동네에는 여름이 찾아온다는 거죠. 점심 시간에 채 30분도 걷기 힘들만큼 더워지는 여름, 그 시작은 이렇게 코로 가장 먼저 다가오더라구요, 여기에서는.
늦은 시간이라 정말 하나도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130으로 달려 집으로 향하면서, 그냥 이대로 달려 아직도 봄인 어딘가까지 가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해봤어요 .아직도 벚꽃이 활짝 피어있고 이렇게 먼지와 흙, 그리고 나뭇잎 냄새 따위는 아직 맡을 수 없는 그런 동네… 열 두 시간쯤 차를 달려 버지니아쯤까지 달려가면, 거기엔 아직 봄이 비교적 멀쩡한 얼굴을 하고 두 팔을 벌린채 제가 품에 안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10년 전, 비행기를 처음 타 보았던 촌놈이 가장 처음으로 가 보았던 바다 건너의 어느 동네, 신발이 닳고 또 닳도록 돌아다녀서 눈을 감고도 골목골목 길을 잃지 않은채로 다닐 수 있을것만 같은 그 동네… 제가 한때 알고 지냈었던 그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거기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비공개라도 좋으니 덧글 남겨서 소식을 들려주세요. 아직도 그 동네에는 봄이 ‘비교적 멀쩡한 얼굴을 하고’ 저처럼 이방인 아닌 이방인을 기다려 주는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두 팔을 벌린채… 그럼 저는 보답으로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벤 앤 제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살테니까요, 이왕 사는 거 와플 콘에다가 두어 스쿱정도 가득 담아서… 만약 하겐다즈가 더 좋으시다면 조지타운의 그곳으로 기꺼이 모시고 갈 수도 있어요. 아직도 거기에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물론 세금이 10%인 것이 못내 못마땅하겠지만, 뭐 상관없어요. 당신이 기쁘다면 그 정도 대가는 마냥 우스운 것일 테니까.
# by bluexmas | 2008/04/26 12:10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