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에 파묻힌 월요일
때로는 딱 꼬집어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는 아침이 찾아오곤 하죠. 오늘이 그런 날이었어요. 따지고 보면 1월부터 5월까지가 미국에서는 가장 버거운 시기에요. 휴일이 없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모든 스위치를 내리고 오후까지 잠을 잤죠. 변화없는 생활 자체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늘 똑같은 사람을 대하는게 그것보다 더 피곤한 것 같아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은 경치가 수천만년 동안 창 밖으로 반복되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경치는, 나무나 물, 산이나 마을 등등은 말이나 할 줄 모르니까 훨씬 낫죠. 사람은…
하여간 오후 늦께까지 잠을 자다가 그때까지도 침침한 눈을 간신히 뜨고 집 근처 서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잡지책을 뒤적이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한 시간 동안 달리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앞뒷마당에 제초제를 뿌리고 저녁을 해 먹고 설겆이를 하고 도시락을 싸고 청소기를 돌리고 마루를 닦고 빨래를 개고…아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늘어놓고 나니까 그것도 아니었나봐요! 하여간 이놈의 집안일이라는 건 무한지옥과 같다니까요. 쏟아부어야 하는 시간에서나 해야되는 일의 종류에서나 끝이 없어요 끝이…
곰곰히 생각해보면 직장인으로써 이렇게 쉴 때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것 같아요. 어쩌다 이렇게 쉬면 참 좋은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 쉬어서 사람들 눈 앞에 안 보이면 저라는 사람의 존재가치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거든요. 하긴, 그런 감정도 따지고 보면 애초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커피를 마시고 잠시잠깐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노트북을 들고와서 하루종일 여기 앉아 있으면 뭘 쓰게 될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더라구요. 일이든 공부든 뭐든 집중해서 해야되는 건 집 아니면 도서관 같은데서 해야된다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이젠 집이라는 공간을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닥거리는 공간으로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낙인 찍어버린 것 같아서 언제나 생각만 하고 있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쓰려면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손, 아니면 생각 가는대로 쓰는 것 이상의 그런 것, 을 쓰려면 집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서야 전업작가들이 멀쩡한 집을 놓아두고 작업실 같은 공간을 마련하는지 그 이유를 아주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듯… 뭐든 창조적인 결과물은 자기 자신을 궁지에 몰아놓지 않고서는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언제나 멀죠, 갈 길이라는 건…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하루를 쉬니까 또 다시 회사라는데 가서 일을 하고 싶어지네요.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다는 하루 종일 혼자 지내면서 저를 둘러싸고 있던 고요함이나 평안함, 뭐 이런 감정들을 잘 모아서 품고 있다가 회사 같은데에서 사람들 때문에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조금씩 풀어서 중화시키는 것이겠죠. 그런 상황에서 생기는 독과도 같은 감정이 저 자신을 좀먹지 못하도록.
# by bluexmas | 2008/04/22 13:06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