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뜨거! – 조림국물의 비애

Heat(2006) – 뜨거운 실제감으로 그려난 주방에서의 체험기

이름만 거창한 Short Rib Osso Bucco

Three. (Three hours later, the ribs now cooked) Turn the braising liquid into a sauce, although the instruction itself raises an obvious question: What is sauce? In this preparation, for instance, this is what you do: first you remove the ribs and set them aside them to cool; then you pour the liquid they were cooked in through the strainer into another pot.

세 번째. (조리 시작하고 세 시간이면 갈비가 다 익게 된다) 조림국물로 소스를 만든다. 조리 방법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소스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예를 들어 이 조리과정에서는, 먼저 갈비를 냄비에서 꺼내서 식히고 국물을 체로 걸러 다른 냄비에 담는다(후략).

– From Heat, Bill Buford

이 글은 번역본을 대강 넘겨보고 쓴 것이기 때문에 부분부분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어본은 다 읽었습니다.

겨울에 서울에 들렀다가 시간이 남아 강남교보에 들렀는데, 예전에 이 책에 대한 글을 올렸을 때 누군가가 번역되어 나왔다는 얘기를 해 주셔서 어떻게 번역되었나 보려고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하필 처음에 눈에 들어온게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브레즈 용액’ 이라는 표현이 제일 먼저 눈에 띄더군요. 브레즈 용액이라… 무슨 과학책도 아니고 용액이라니 대체 무슨 단어를 용액으로 번역한 것일까 집에 와서 책을 들춰보았더니 바로 저것이더군요. Braising liquid, 그러니까 조림국물인 것이죠. 네이버 사전에서 braise를 찾아보면 우리말로는 ‘고기나 야채를 볶은 후 소량의 물로 밀폐용기에서 천천히 삶다(익히다)’ 라고 나와 있고, 영어로는 ‘When you braise meat or a vegetable, you fry it quickly and then cook it slowly in a covered dish with a small amount of liquid. VERB Ibraised some beans to accompany a shoulder of lamb.’ 라고 나와 있습니다. 확인차 찾아본 Merriam-Webster에는 ‘to cook slowly in fat and little moisture in a closed pot ‘ 라고 나와 있으니 결국 조림인 것이죠. 단, 네이버 영영사전에서의 설명에서 ‘fry’는 ‘sear’로 바꿔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fry는 열을 이용해서 겉과 속을 다 익히는 것이고 sear는 음식이 탈만큼 뜨거운 온도에서 겉만 익혀주는 것이니까요. 얘기가 삼천포로 약간 빠졌는데, braise가 아주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책이 음식 만들기에 관련된 주제로 쓰인데다가 이 장(章) 전체가 이 음식의 조리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도 braising liquid가 ‘조림국물’이 되지 못하고 ‘브레즈 용액’이 된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바로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 책 Heat(국내 번역본 제목: 앗 뜨거!)에서 이 장(章)은 전체가 이 갈비조림, 그러니까 Osso Bucco에 관련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Osso Bucco는 이탈리아 밀라노 지방에서 유래된 조림요리로서, 주로 송아지 정강이 뼈와 살로 만들었는데(소의 정강이를 뼈에 수직으로 자르면 가운데에 뼈가 있고 그 뼈를 고기가 둘러싸고 있겠죠), 최근 들어 사람들이 예전에 먹지 않았던 Short Rib, 그러니까 갈비로 이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책에서 다뤄지는 이야기의 배경지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갈비를 물렁물렁하게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조리는 것처럼, 조림은 질긴 고기의 연결조직(Connective Tissue)을 끊는 조리법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단, 우리나라의 갈비와 조리법에서 다른 부분이라면 서양의 스튜요리는 고기를 뜨겁게 달군 냄비에 지지는(sear) 것으로 조리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리 방법은 꽤 많은 음식의 레시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caramelization라고 일컫습니다. 식재료-여기에서는 고기-의 표면에 있는 당(sugar)에 열을 가함으로써 분자구조를 바꾸고 또 그럼으로써 맛을… 너무 장황해지니까 넘어가기로 하죠. 하여간 Osso Bucco는 저도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Osso Bucco를 만들고 글을 올렸을 때, 또 다른 분이 덧글을 다셔서는 ‘Short Rib’이 ‘쇼트립’으로 표기되었다고 알려주시던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브레즈 용액만큼이나 황당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리관련지식을 들먹여서 갈비를 자르는 방법에는 뭐뭐가 있다고 얘기하기 이전에, 책의 이 부분에서는 그냥 갈비조림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실 갈비를 자르는 방법에는 서너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LA 갈비’ 라고 부르는 것을 여기에서는 ‘Korean Cut’ 이라고 일컫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Short Rib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찜갈비와 똑같고, 구글만 검색해봐도 이미지가 수천개 나오는 마당에 Short Rib이 그냥 쇼트립이 된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대화가 경어체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건 이 책 뿐아니라 다른 책의 번역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단 영어에 공손하고 예절바른 표현과 그렇지 못한 표현이 있기는 해도 경어, 즉 존댓말이라는 것 자체는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번역이 얼마나 대화는 물론 책 전체의 분위기를 다르게 만드는지 번역하시는 분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인기 주방장 Mario Batali가 자신의 식당 주방의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는 작가에게 존대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던데, 위계질서가 군대와 같다는 주방에서 주방장이 맨 밑의 접시닦는 사람이나 line cook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할지,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완벽한 반말이, 이 경우 작가의 나이가 많고 완전한 고용-피고용자의 관계가 아닌 걸 헤아린다면 ‘이봐, 이렇게 저렇게 하라구-‘ 정도의 번역이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하여간 번역본을 볼 때부터 궁금했는데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가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번역하신 분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음식관련 책 전문번역가도 아니고(물론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해마시길), 전문번역가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여러 분야의 책들을 번역하셨더군요. ‘전문번역가’ 는 직업으로서 번역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한 분야, 그것도 아니라면 두어서너다섯가지 정도의 분야에 관련된 책을 번역하는 사람을, 그것도 아니라면 그 두 가지를 다 만족하는 조건의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그리고 어쨌거나 이 책은 음식관련 책으로써 첫 번째 번역… ‘하늘이 내려준 맛, 쇼트립‘ 이라니, 정말 책의 번역판 제목처럼 ‘앗 뜨겁’습니다. 사람들이 스트립이나 쇼트랙으로 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멍청한 저 뿐이겠죠?

 by bluexmas | 2008/04/20 11:53 | Book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by stella at 2009/05/13 18:00 

쇼트립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렸어요!! 하하

읽으면서 계속 등장하는 쇼트립이 뭘까..살치살과 같다고는 하는데 살치살은 또 뭘까….했더랬죠. 개그 프로를 보고는 있는데 나만 웃지 못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달까요?

이 책은 번역이 껄끄러워서 그런가, 광고 및 기대치에 비해 별로더군요. 비슷한 종류라면 저는 ‘키친 컨피덴셜’이 더 좋았습니다. ^^ (책도 책이지만 시트콤은 10번을 봐도 재밌죠 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14 00:45

네, 한 마디로 음식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이 음식책을 번역한 것 같은 일종의 코미디를 연출한거죠. 번역, 문제 많아요. 물론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남이 해놓은 일을 까대는 것이 너무 쉽기는 하지만.

키친 컨피덴셜 시트컴은 나쁘지는 않았는데 금방 망했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