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본 Hell’s Kitchen
어제, Gorden Ramsey의 Hell’s Kitchen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어딘가 모임에 갔다가 유명한 주방장들이사실은 그렇게 알려진 것처럼 악독한 인간들이 아니고, 고든 램지도 마찬가지다… 라는 얘기도 들었기에 약간은 관심을 가지고 보았지만, 보는 동안 계속해서 쌓이는 스트레스 때문에 누가 탈락하는지 보여주는 결말까지 40여분의 시간동안 참고 보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정없이 미처 날뛰는 듯 보이는 고든 램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쉴새없이 거듭되는 출연자-일선에서 일하거나 요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프로답지 못한 실수때문이었습니다. 15년을
주방에서 일했다는 여자 출연자 하나는 고기를 조리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손님이 원하는 정도(rare, medium, well-done…)로 고기를 익히지도 못하고 팬을 너무 달궈서 불길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거기에 꼭 맞는 짝으로, 남자 출연자 하나는 연어를 제대로 익히지도 못해 속은 온통 날 것으로 남겨놓고서는 리얼리티 쇼라는 상황과 기술적인 측면을 탓합니다. 거기에 자기의 책임인 디저트 메뉴를 외우지 못하는 남자 지원자는 라메킨에 수플레 반죽을 건성으로 부어 그릇 가장자리를 지저분하게 만들면서 디저트는 여자들이나 만드는 거지 자기의 분야가 아니라고 합니다. 결국 그는 남자팀의 탈락 후보로 지명되고, 자기는 아직 능력을 다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남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짤리게 됩니다. 그리고는고기를 제대로 못 익힌 여자 출연자가 탈락 위기에 처하자 울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15년 동안 일하고도 이것밖에 못하는 나에게 스스로 실망스럽다(뭐 가식적인 인간을 너무 많아 봐와서 자신도 자신이 가식적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게 가식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가식이 아니라고 전제한다면 저게 바로 올바른 직업인의 자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든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게 가장 부끄러운 거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신은 다 아니까요)’ 라고 말한 것에 대해 비아냥거립니다. ‘울어서 남아있을 수 있다면 나도 울었겠다. 나는 남자라 그런 것 못한다…’ 라구요.
물론 저의 직업이 음식을 만드는 상황처럼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마감이라는게 있고 시간에 쫓기다가 우연히 발생하는 문제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상황에 여러번 처해 스트레스를 받아왔기 때문에,위에서 말한 것처럼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보는 동안 마감때마다 느끼는 것과 비슷한 스트레스가 목구멍을 꽉 채우면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더군요. 세상에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고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남의 돈 먹기가 쉬운일이 아니다’ 라는게 세상 불변의 진리겠지만, 가끔 느끼기로 어떤 직업군에서는 정말 아주 잘 해야만 칭찬 받을까 말까하고 실패하면 다른 직업들군에서의 그것보다 더 심하게 비판받는 것 같은데 그런 직업군의 대표직업 가운데 하나가 조리쪽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가끔 비아냥거리면서 그 쪽으로 직업을 왜 안 바꾸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도 너무 잘 알고 또 직업으로 하면 즐기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뭐 이 나이에 아예 다 갈아엎고 새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원하는게 아니거든요. 직업이라는게 삶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비롯해 정말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치지만 궁극적으로 직업 자체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의 정도를 너무 많이 좌우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게 저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에 지금 직업에 ‘간접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아, 얘기가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은데, 역시나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건 직업 선택이라는게자기가 가진 재능을 극대화하고, 또 그럼으로써 작게는 고용주와 자기, 크게는 산업 전반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정말 중요하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 사람 자체가 성실하지 못하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으면 뭘 해도 말아먹기는 마찬가지라는 유사 사실입니다. 누군가 어제의 프로그램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짤린 남자 출연자의 자세를 보건데 뭐 뭘 해도 잘 하긴 틀려먹은 것 같더군요. 하여간 어제는 우연히 보았지만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음식 만드는 일은 즐거움인데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역시 전혀 즐겁지 않았거든요.
# by bluexmas | 2008/04/17 10:36 | Media | 트랙백 | 덧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