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12주년
1996년 4월 12일,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했고 나도 다른 녀석들과 별 다를 것 없이 그들의 부르심을 받고 진짜 사나이를 부르며 제발로 뛰어 798일짜리 어둠의 터널로 향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터널을 벗어난 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번에 가면 양평에 한 번 가 볼 생각이다. 시장 골목길 어느 분식집에서 먹었던 찐빵이랑 만두 생각이 아직도 가끔 난다.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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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썼어야 하는 건데 긴 영화를 봤더니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그러니까 어제는 입대 12주년 기념일이었죠. 뭐 기념할 건덕지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날이 되면 이런저런 생각, 아니면 기억이 조각조각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더라구요. 신체검사 받는 전날 술을 엄청 퍼 마시고 잠도 제대로 못 잔채로 가서는 고혈압 판정 받았던 기억도 있고(게다가 저는 보통 신검 대상자들이 입는 반바지가 안 맞아서 큰 걸 입어야만 했는데, 그건 또 다른 색깔이라서 엄청 민망했던 기억이…), 뭐 퇴소해서 정말 밤 새도록 기차타고 가다가다 의정부까지 가서, 짤없이 전방행이니 죽었구나, 라고 벌벌 떨었던 기억도 있고… 기억이야 엄청 많겠죠, 대부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테니 그게 문제겠지만.
사실은 입대하기 전에 시험을 봤었어요, 군종병이 되려고. 물론 각각의 부대에 비공식적으로 군종병이라는 보직이 있기는 한데, 이건 육군 주특기 분류를 할 때 공식적인 인력으로 분류(주특기 번호 4311, 군종행정이던가요…)되는 것으로 시험에 붙으면 사단급 이상의 종교시설이나 그에 관련된 부처에서 근무를 하게 되죠. 종교에 몸 바친 어린양은 애초에 아니었지만 나름 성당도 열심히 다녔고 성경지식도 있고 해서 지원을 했고 부평인가에 있는 부대(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군수지원단 같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되네요)로 시험을 보러 갔어요. 분명 그 사단급 부대의 군종참모쯤 되는 목사와 마주 앉았는데, 지원자는 저와 무슨 기독교 신학생이라는 녀석, 그렇게 둘이었죠. 그러니까 50:50의 확률이었고 시험은 성경 관련 필기와 면접이었는데, 제가 지금은 이렇게 불경의 정상을 달리는 종자지만 초등때는 나름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서 뭐 말하기 부끄럽지만 상도 먹어보고 교리 가르치던 학사님이 신학교를 보내지 않으시겠냐는, 지금의 불경스러움을 스스로 돌아볼때 거대한 농담이 아니었을까 사료될 수 밖에 없는 말씀까지 해 주셨던 개인사를 자랑하는지라 사실 시험은 어렵지 않게 봤죠. 해서 시험 성적만이라면 당연히 붙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경쟁하고픈 마음도 없는 경쟁자께서 신학대학에 다니신다는 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는데, 결국은 그게 현실이 되어서 떨어지더라구요. 나중에 알아보니 예상대로 시험은 제가 더 잘 봤는데 그 친구가 신학생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누구는 아예 자기만 지원해서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었다던데 참…
하여간 그래서 논산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2학년으로 올라가서 바꾼 전공인 건축으로 전공분류가 들어가면 짤없이 공병대가서 삽질을 할 것 같아서, 신검때 분류되어있던대로 화학공학과를 다니다 왔다고 계속 우겼죠. 참고로 공병대는 레미콘으로 쳐야 될 규모의 공사마저 사람이 삽으로 일일이 비벼서 타설하는 통에 디스크 환자도 많고 그래서 공병대 아닌 골병대로 불린다고…물론 들은 얘기라서 사실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뭐 군대 갔다오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원래 논산훈련소는 따로 주특기 교육이 필요한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시설이고 일반 보병은 주로 사단 부설 신병교육대에서 양성되기 때문에 저는 어쨌거나 뭔가 특기를 받아서 갈 운명이었고, 결국 전혀 연관성이 없지만 ‘화학공학=석유’ 라는 군대방정식의 은총을 입고 유류관리병으로 분류되어 양평으로 가게 되었죠.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의정부까지 흘러가게 되었는데, 논산(연무대)역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올라 가서 가장 마지막 역이 의정부고, 거기에서 내리면 대부분 전방으로 가게 된다는 전설을 익히 들어왔었던터라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고나 할까요… 우리나라 육군이 1,2,3군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3군으로 배치되는 병사들이 집결하는 306 보충대로 가서 먹었던 그 최악의 아침밥에 바닥이 하얗게 일어난 플라스틱 식판, 그리고 그때에도 벌써 갈색 계란-갈색 계란이 더 영양가가 높다는 검증되지 않은 얘기가 나돌았죠-에 눌려 사라진 흰색 계란의 생경함은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정말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네요. 뭐 하여간 흘러흘려 양평으로 갔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저 위의 글은 2년 전에 싸이 홈피에 썼던 것이구요.
참, 논산에서 군악대로 갈 뻔도 했었어요. 입대 후 입소대에서 신검 등등 이런 저런 것들을 하는데 악기 다룰줄 아는 사람 나오라고 하길래, 기타랑 베이스를 칠 줄 안다고 둘러대고 훈련소 군악대에 가서 베이스를 쳤죠. 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는데 베이스를 잡고 슬랩하는 시늉을 내줬더니 다들 진짜로 칠 줄 아는 걸로 생각해서… 사실은 군대니까 악기 관리가 기가 막히게 잘 되어서 손가락이 미끄러졌을 뿐이었거든요. 자유인일때도 등한시 했던 악기 연습 나랏돈 받으면서 하는걸까, 그러면 제대해서 바로 음악의 길로…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과제중이라 뽀대가 안 나서 안 뽑은 것 같아요. 맞는 제복이 없을 확률이 높았거든요. 뭐 군악대는 채찍으로 때려가면서 노래 외우고 악기 연습하게 만들거나 시간 나면 무조건 작업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별로 내키지는 않았었지만.
# by bluexmas | 2008/04/13 16:39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