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출동
드디어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이런 일을 시켜달라고 얘기한게 몇 달짼지… 일을 시작한지 3년에서 두 달 빠지는 지금, 면허시험을 볼 수 있는 조건을 거의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경험이 없어서 올해 전반기 안으로 시험을 볼 수 없는 상황인데, 그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올 6월부터 미국 건축사 시험제도가 바뀌기 때문이죠. 원래 아홉 과목이어왔던 시험을 일곱 과목으로 바꾸는데, 예상으로는 더 어려워질거라고들 하거든요. 미국에서 건축사 면허를 따려면 하루에 한 과목 밖에 치룰 수 없는 시험을 아홉과목 치뤄서 다 붙어야 합니다. 회사 최고 기록이 2주에 하나씩 봐서 한 번에 다 붙은건데, 그래도 석 달은 걸리니까 이 시험이 그렇게 간단한 종류의 것은 아닌 셈이죠. 보통 1년씩들도 보고, 그래도 못 붙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까요. 공부하다 말고 마감이 걸리면 뭐 연기해야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어쨌든 저처럼 이렇게 큰 회사를 다니면 고층 건물과 같이 큰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 편으로 건축 실무의 다양한 측면에 노출되지 못한채 단순한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단점이 있죠. 워낙 이 일이라는게 딸린 가지가 많다 보니 굳이 디자인에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디자이너가 될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그런 분야에서의 경험이 너무 없다시피해서 요즘은 앞으로의 경력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제가 그런 분야의 일을 하는 걸 누가 본 적이 없으니 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른다는거죠. 그럼 이젠 그런 기회가 생겨도 타의에 의해 선택되지 않는 경우도 생기니까, 일종의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쯤에서 끊어야 되는데, 큰 회사를 다니면 참으로 쉽지가 않더라구요.
하여간, 당분간은 시간을 쪼개서 현장에 나가게 되었다는 얘기에요. 뭐 현장이라고 하니까 뭔가 멋진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곳에 가서 근사한 일이라도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고 아틀란타 시내에 있는 실내 경기장 보수하는데 나가서 관중용 플라스틱 의자가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스프링은 시끄럽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이는지, 나사는 튼튼하게 박았는지… 뭐 이런 걸 점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의자 한 200개 정도를 하나하나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면서 잘 움직이는지 확인했는데, 앞으로 몇 천개 더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 by bluexmas | 2008/04/09 09:26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6)
비공개 덧글입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나봐요.
어느 편에 가까워지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그나저나 점검해야할 의자가 참 많군요.ㅋ~
hotcha님: 의자 하나 때문에 경기장 전체가 잘못 지어졌다는 소리까지는 듣지 않겠지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건축쪽에서 져야하겠죠. 그래서 이 직업이 참…
의자는, 아직도 수천개 남았답니다. T_T
turtle님: 시험을 한 번에 철썩 적어도 일곱번은 붙어야 한답니다. 신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