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굶으세요

예정대로라면 내일이 아침 당번날이어서 어제 미리 장을 봤어요. 어제 내린 눈으로 오늘 도로가 미끄러워서 회사에 안 가게 되면 장보려고 밖에 나오는 것도 그렇게 안전한 선택은 아닐 것 같아서 운동하고 또 장보고 또 그것도 모자라 영화까지 보고 들어왔죠. 그래서 오늘 저녁에 준비했다가 아침에 만들어서 가져가려고 했더니, 난데없이 내일은 회사 도면창고로 출근을 하라고 그러더라구요. 사실은 요즘 회사에 일이 없어서 일다운 일을 못한게 꽤 오래거든요. 그래서 결국 이런 일도 하게 되었답니다. 어쨌거나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가 없는데 아침은 어떻게 해야되는건지… 처음에 했던 생각은, 그래도 아침을 만들어서 사무실로 출근, 차려놓고 차로 10분 거리인 도면창고(가본 적 없죠 물론…)에 갔다가 퇴근할때 다시 들러 그릇을 거둬간다…뭐 그런 것이었는데 마음을 그렇게 먹고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니 과연 내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별로 의미도 없고, 그렇게까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가치가 없는 일인 것 같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그러죠. 쟤는 음식만들기를 좋아하니까 자기 차례가 오면 신나서 만들어 가지고 온다고… 뭐 아주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건 사실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 신경쓰는 이유의 겉만 수박처럼 핥는 수준일거에요. 사실 그것보다 제가 더 신경을 쓰고 싶은 이유는, 제가 먹으나 다른 사람들이 먹으나 먹는건 매한가진데 제가 뭘 먹을때는 신경쓰고 다른 사람들이 먹을때는 소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가끔 사람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쓰레기 음식들을 사오는 걸 볼때마다 정말 궁금했거든요. 다들 그런 걸 가족들한테 아침으로 먹으라고 사가는지… 언제나 한결같이 지키기는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삶에 일관성이라는것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래도 영양이나 그로 인해 얻는 건강 등등을 신경써서 먹으면서, 남들 먹일 차례에는 베이글이나 한 상자 사다가 던져 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내가 아니니까. 그리고 많이 써봐야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더 쓰는거고 복잡한 음식도 만든 적 없는데 제가 그렇게 두 시간 들여서 20명이 잘 먹으면, 그래도 그 두 시간이 아깝지 않잖아요. 그래봐야 한 사람당 뭐 몇 분에 불과한 시간을 투자해주는건데…

어쨌거나  다들 아침은 굶으라고 했어요. 가끔은 그게 뭐든 별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게 돼요. 자기는 뭐 그 정도 대접쯤 당연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자기가 줄 때가 되면 받은 만큼 절대 주지 않는 사람들…물론 세상만사가 모두 give & take으로 흘러가야 되는건 아니니까 손해도 볼 수 있는건데, 기껏 그렇게 생각하고 흘러가는 그림을 쭉 보다보면 저런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절대로 잃으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잘 해주는 것도 끝이죠. 나도 귀찮고 피곤한게 뭔지 아는 사람이니까.

이것저것 장본게 아까워서라도 그냥 해가려고 했는데, 반품시키고 손 터는게 낫겠더라구요. 이번엔 좀 다른 걸 시도해볼 생각이었는데, 그것 역시 다음 기회로. 그러니까 그냥 굶으세요… 어차피 누가 밥상 차려서 손에 밥 숟가락 쥐어주지 않으면 굶을 사람이 태반일텐데. 뭐 누구누구는 그것도 모자라서 떠 먹어줘야만 한다던데요?

 by bluexmas | 2008/01/18 13:38 | Life | 트랙백 | 덧글(6)

 Commented by 카렌 at 2008/01/18 14:45 

잘 하셨군요. 베이글 너무했다;

 Commented at 2008/01/18 15: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까만머리앤 at 2008/01/19 01:24 

음.. 시원합니다 🙂

 Commented by 笑兒 at 2008/01/19 12:23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굶어도 되요!! 🙁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고마워-라고 하면, 만든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데!!

(더 큰 행복은, 맛있게 먹어주는 거구요 🙂

잘 하셨어요~ 🙂

 Commented by 모조 at 2008/01/19 21:19  

저도 그런 생각 종종 하는데

입장바꿔놓고 생각해보니

무뚝뚝해서 그런지 고맙다는 표현 잘 안했던것 같아요;

반성반성;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1/21 17:05 

카렌님: 베이글보다 못한 메뉴도 열에 다섯은 올라오기 마련이죠…

비공개님: 그러니까요. 그게 딱 제 생각이에요. 뭐 해주면 바로 불평해대고…

까만머리 앤님: 시원하시다니 쓴 보람을 시원하게 느껴요^^

笑兒님: 지난달엔 쿠키를 구우면서 이것저것 변화를 줘 보다가 Cardamom을 넣은 쿠키를 만들어서 회사에 가져갔는데, 같이 일하는 선배가 한 입 먹더니 ‘야, 이거 왜 생강을 넣었냐’ 라고 바로 들이대서… 이상하면 먹지 마시라고 대꾸하는 수 밖에 없죠 그럴땐.

모조님: 앗 반성하실필요 없는데… 무뚝뚝한 거랑 원래 그럴줄 모르는거랑 딱 보면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