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남하
눈이…왔어요.
이곳 생활도 이제 7년째로 접어드는데 이렇게 눈답게 내리는 눈은 정말 처음 보는지라 사무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환호성을 한 번 정도는 질러줘야만 예의일 것도 같은데, 눈의 고향에 갔다 온게 한 달도 안 되었으니 그저 시큰둥할 수 밖에요. 하늘의 가슴은 요 며칠 계속 찬 기운을 머금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내리기는 했지만, 땅의 가슴엔 아직도 열이 남아 있는 듯 눈은 그렇게 조근조근 쌓이지 못한 채 회색빛 물로 녹아 하수구로 달려가고, 그걸 보다가 보다가 하늘도 열이 받았는지 이젠 눈이 비로 바뀌어 제법 쏟아지고 있어요. 도로가 얼어붙을 것 같은데, 학교들도 수업취소를 하고 있으니 회사 또한 좀 쉬지 않을라나 기대는 하고 있는데 아직 모르겠네요. 그럼 그냥 난방 따뜻하게 틀어놓고 창 밖을 바라보면서 술이나 마셔줄까 해요.
이렇게 하루 종일 눈이라도 내릴 듯 우중충한 날씨가 찾아오면 꼭 이런 날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보던 사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생각나곤 해요. 그날 저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정동의 극장에서 누군가와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동안 껴져있던 전화 속으로 그 길 건너 병원에 계시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아주 조용히 들어와 있었죠. 그래서 저는 집, 아니 자취방으로 돌아가 정장으로 갈아입곤 다시 영화를 보았던 곳 길 건너로 돌아와 주말동안 손님들을 받았구요. 그렇게 날씨가 곧 터질 것 같았음에도 눈은 내리지 않았다가, 결국 발인날이 되어서야 펑펑 쏟아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지 않았던 발인날 사진에는 눈송이가 그 분의 영정사진 얼굴보다도 더 크게 찍혀있던 기억이 나네요. 음, 저도 그 눈의 고향에 가서 내리는 눈을 사진에 담으려다가 기술 부족으로 실패했는데, 역시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찍어서 내리는 눈도 사진 속에 자리잡았던 걸까요? 눈치도 없이 세상 떠난 사람 얼굴보다도 더 크게?
# by bluexmas | 2008/01/17 15:22 | Life | 트랙백 | 덧글(3)
어제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택시 안에서 하얗게 눈꽃입은 풍경을 내다 보니 아, 돌아왔군 하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