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o (2007)-2007년 최고의 코미디 영화
지난 얼마간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영화를 많이 알고 보시는 분들의 글을 보았더니 갑자기 제가 영화에 대해 너무 모르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당분간은 영화에 대한 글을 그만 써야되는 것 아닌가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저도 제가 모르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으니 정보기록 차원에서라도 무엇인가 남겨두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을 거듭하고 그냥 모르면 모르는대로 쓰기로 다시 마음을 먹고야 말았습니다. 뭐 몰라봐야 욕 밖에 더 먹을라구요.
잠시 동안의 여행 덕분에 보아야 될 영화가 꽤나 밀렸지만, 그 모든 영화들을 제쳐두고 첫 번째 선택은 단연 이 Juno였습니다. 일단 돌아다니는 입소문 때문에라도 그랬지만, X-Men 세 번째 편에서 Kitty Pryde로 출연했던 Ellen Page와 또 다른 올해의 코미디 걸작이었던 Superbad에 출였했던 Michael Cera라는 두 어린 배우의 연기가 궁금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영화도 영화였지만, 언제나 낚이라고 보여주는 예고편에서도 제대로 낚였으니까요.
극중에서 두 어린 배우는 열 여섯의 고등학생이고 같이 밴드를 하는 사이인데, 어느 날 운우지정을 나누었다가 여 주인공인 Juno가 덜컥 임신하고야 맙니다. 세 번이나 자가임신진단기구를 사서 시험해 본 그녀는 결국 임신임을 확인하고 가장 흔한 방법인 낙태를 해결책으로 결정, 시술을 받으러 가지만, 벌써 뱃속의 태아가 손톱을 가지고 있을 만큼의 생명체라는 얘기를 듣고 포기한 뒤 아이를 낳아 원하는 가정에 입양시키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사실 열 여섯살짜리의 임신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아주 놀랄만한 일은 아닌 게 요즘의 현실-다들 아시겠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열 여섯살 먹은 여동생이 최근 임신을 했다고 해서 아주 난리가 났죠.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전국 개봉과 발맞추어 뉴스가 터졌다고 하던데…-임을 감안할 때, 줄거리 자체만으로는 미친 듯이 웃겨주는데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Diablo Cody(스트립 댄서로 일하고 그 경험을 책으로 냈다는군요)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대사와 그 대사를 무난히 소화해주는 연기자들 덕분에 영화는 계속해서 긴장감을 조금도 잃지 않고 웃겨주며 달립니다. 여기에 요즘 영화들 치고는 상대적으로 짧은 편인 한 시간 반의 러닝타임도 영화가 군더더기 없게 느껴지는데 한 몫 돕습니다.
생각해 보면 영화가 그렇게 웃긴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나이 어린 주인공이 임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이의 부모들은 그야말로 난리를 쳤을텐데, 부모들은 물론 당사자 역시 약간은 무심하게도 보일 정도로 열 여섯살의 임신에 대해 ‘그럴 수도 있는거지 어쩌겠냐’ 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위에서 말한 그 디테일이 살아있는 대사들은 마치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농담 따먹기와도 같이 적재적소에 터져 제대로 웃겨주는 것입니다.
Michael Cera는 Superbad에서와 비슷하게 조금은 nerd스런 캐릭터로 일관해서 조금은 기대 이하인 반면, 임신 이전에도 학교에서 별난 아이 취급을 받다가 덜컥 임신마저 하게 되는 Ellen Page의 연기는 주연배우라서 당연하겠지만 이 영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임신한 듯, 만삭의 배 위에 자동차를 올려놓고 노는 그녀의 표정에선 무심함이 넘쳐 흐르지만 그 뒤에 알듯 모를듯 깔려 있는 소외감 내지는 그로 인한 슬픔은 결국 출산으로 인한 고통으로 폭발, 절정에 이르러서야 그녀의 무심한 듯한 태도가 결국은 당연히 원하지 않은 임신과 그로 인해 생기는 안팎의 변화로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썼던 가면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녀가 그 모든 감정을 두루 담아 보여줬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무척 재미있게 보았지만, 운까지도 맞춰주는 영어 대사가 과연 우리나라의 모미도씨와 같은 훌륭한 번역가들의 손을 거쳐 어떻게 탈바꿈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어떻게든 웃기게야 만들어 주겠지만,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개봉될지의 여부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영화의 성격이나 주인공들에 대한 설정(같이 밴드를 하고 Juno는 펑크 음악을 좋아한다는)에 기댄 탓인지 영화는 내내 인디 내지는 클래식 락 등등의 좋은 음악들을 들려줍니다. 그만큼 음악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사운드트랙을 들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by bluexmas | 2008/01/09 14:08 | Movie | 트랙백 | 덧글(8)
내일이라도 달려가야지 싶습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1님: 아앗, 저는 신경 안 썼었는데 그러고보니 정말 미끈한데요?^^ 제모에 무지 신경 쓴 듯한…
Ludens님: 제가 고국사정에 워낙 어두워서 잘 모르겠는데 아직 아니지 않을까요? 모미도씨 일당이 생각보다 번역에 애를 먹을지도 모르는 일…
비공개 2님: 하하, 저는 워낙 얼굴없는 마이너 블로거라서 꿈에 얼굴이 안 나오는 것은 너무다 당연한 것 아닐까요(그러나 잘 뒤져보시면 블로그 어딘가에 시각적 실마리도 숨어 있지요)? 그리고 34가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아시죠?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