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봤다니까
그러니까 서울로 출발하기 며칠 전쯤, 같이 일하는 p선배가 묻더군요.
“그래서 몇 건이나 잡혔어?”
“네?”
“선 말이야”
“……-_-;;;”
그러니까 저는 단 한 번도 선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간다는 얘기를 꺼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는 마치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저는, 서울 가는 목적이 그것도 아니고, 생각도 안 해봤으니 할 건덕지도 없다고 대답했죠.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잘 알지 않으시냐고 덧붙이면서. 그러나 선배는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어요. 오죽하면 제 차를 공항에서 끌고 회사 주차장으로 가면서 ‘꼭 짝 찾아오기를 기도할께(교회는 다니지만 그렇게 열심도 아닌 사람이 ‘기도’ 라는 단어까지 입에 담아가면서)’ 라고 말까지 했을까요-_-;;; 그러나 저에겐 아무런 건덕지가 없었죠. 제가 그런 걸 원하든 그렇지 않든 없는데 어쩌겠어요. 그리고 없는 건 없는 거니까 없다고 했던 것이구요.
그리고 돌아와서 처음 같이 회사에서 만난게 지난 3일이었는데, 점심때가 되어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다가오더니 또 묻더군요.
“그래서 찾아왔어?”
“네?”
“짝 말이야”
“……-_-;;;”
그래서 반복하기 싫었지만 다시 한 번 말했죠. 서울가는 목적이 그것도 아니었고, 생각도 안 해봤으니 할 건덕지도 없었다구요. 그리고 또 덧붙였어요.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잘 알지 않으시냐고.
그러나 선배는 여전히 믿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또 다시 물어보던데요. 다른 나이 드신 선배랑 셋이서 커피 마시는 자리에서.
“그러니까 안 봤다구, 정말?”
“네?”
“선 말이야.”
“……-_-;;;”
아, 이쯤되면 정말 이걸 저를 향한 걱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사생활에 대한 순도 100%의 호기심으로 봐야되는지조차 헛갈리게 되는 것이겠죠. 그러나 저는 같은 대답만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어요. 서울가는 목적이 그것도 아니었고, 생각도 안 해봤으니 할 건덕지도 없었다구요. 그리고 또 다시 덧붙였어요.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잘 알지 않으시냐고.
기나긴 수다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까놓고 선배에게 물어봤죠.
“선배님, 혹시 형수님이 계속 궁금하시대요?”
“……”
원래는 과묵한 선배는 다시 묵묵무답 모드로 돌입, 저는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질 수 없었지만 자리로 돌아가는 선배의 등에 대고 비아냥을 촉에다 듬뿍 바른 화살을 날렸죠.
“선배님, 아무래도 오늘 밤에 저 선배님이 선 봤냐고 계속해서 물어보시는 꿈 꿀 것 같은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과묵한 선배는 등을 돌려 저에게로 다가오며 또 다시 묻더군요.
“그러니까 정말정말 안 봤다구, 정말정말?”
“……T_T;;;”
아, 정말 울고 싶었어요. 그냥 순수하게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계속 물어본다고 생각해야 되겠죠? 아무래도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더 이상 똑같은 질문 받기 싫어서라도 있는 동안 점심, 저녁 두 번씩 30번도 넘게 봤다고 대답해야 될 것 같아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고문할때 똑같은 진술서 백 번 쓰게 해서 맨 처음 거랑 다른 부분 하나 발견할때마다 머리털을 하나씩 뽑는다거나, 채찍질을 한다거나 하면 나중에 돌아버려서 안 지은 범죄도 자기가 저질렀다고 그러고 덤으로 남한테 덤태기 씌우려고 그랬던 것마저 자기가 독박쓴다고… 저는 그냥 30번도 넘게 했더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열 명도 넘는데 도저히 추릴 수가 없어서 유타주로 가서 종교 개종하고 모두 데리고 살겠다고 대답해야 될 것 같아요. 유타주에 스키, 스노우보드 탈 산이 많으니까 열 명 한꺼번에 탈 수 있는 기차 스노우보드를 만들어서 한꺼번에 타고 놀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생각만해도 등골에 소름이 좌아악 끼칠 정도로 좋은데요.
# by bluexmas | 2008/01/08 12:41 | Life | 트랙백 | 덧글(9)
“저, 사실은 3번쯤 봤는데, 키가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 조건이 어때서 마음에 안 들어서 어쩌구… 선배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세요!”
라고 하시면 좋은 선배 부부는 잃겠지만 더 이상 묻진 않으실 거라능. =_=
전 사무실에서 알람 맞춰놓고 전화받는 척이라도 해서 남자친구 있는척하고 싶을 정도에요. 참견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남는 총각은 아무나 다 제 옆에 같다 붙이려고 하네요! 쓰다보니 제가 끓어오르네요. 씩씩씩….
설마 또 물어보시진 않으시겠죠..? 으허허 저야말로 기도할게요 ㅋㅋ
conpanna님: 에이, 흥분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다 그렇죠 뭐… 아예 그냥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면 사람들도 시들해서 그러다 말거에요.
재인님: 아니 뭐 곤욕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일에 거짓을 말할 사람처럼 보이는 현실이 더 싫겠죠?
zyoun님: 에 뭐 그랬으면 그래서 가노라고 선언이라도 했겠죠? 소개라도 시켜주면 모를까 참…
까만머리앤님: 덧글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은데, 잘 지내셨어요? 앤님 기도 덕분에 이제 무사평안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