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팔아요
내일 아침 비교적 일찍 방을 비워주려면 벌써 잠들었어야 되는데, 약간 강박적으로 기록을 정리하다보니 시간이 좀 늦었네요. 사실 제가 바로 집으로 간다면 기록을 이렇게 급하게 정리할 필요가 없는데, 바로 돌아가는 곳이 집도 아니고 또 집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더 있어야 되고, 어쨌거나 집에 갈 때쯤이면 막 다니면서 느낀 감정들은 대부분 날아가버리고 없을테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뭔가 해야 될 필요를 느껴요. 그래도 이번엔 컴퓨터를 들고 다녀서 다행이에요. 이젠 손글씨가 생각의 속도는 물론 타자의 그것마저도 따라잡지 못하니까 뭔가 메모를 하는 것도 고역이거든요.
하여간 그래서 북해도 한정이라는 삿포로 클래식 맥주를 마시면서 뭔가 적고 있었어요. 어디에? 여기엔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여기엔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군요-_-;;; 뭐 그렇다면 어디엔가는 되고 있겠죠?
온 첫 날 밤에 방에서 인터넷이 되고 있는 줄을 모르고 모텔 로비에 놓인 컴퓨터에서 한글도 아닌 영어로 꾸역꾸역 글을 쓰고 있는데, 웬 아저씨-그것도 여기에 묵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가 옆의 컴퓨터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으시더라구요. 화면이 너무 커서 제가 훔쳐보지 않아도 다 보이는 그게 대체 뭔가 봤더니 그…야한 언니들 사진이 넘실거리는 홈페이지더군요. 아저씨는 그 밤이 너무 외로우신건지 어떤건지 마음에 드는 언니를 찾으시려고 애를 쓰더니 나중엔 할인 쿠폰까지 딸린 컴퓨터로 뽑아서 다시 총총 어둡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밝은 밤거리로 사라지시더군요. 뭐 그래서 그냥, 아, 밤이 외로운 남자들이 그렇게 많은걸까? 생각을 했다는거죠. 난 어차피 그렇게 잠을 잘 자는 사람인적도 스물 넘어선 거의 아니다시피 했는데 밤이 외롭지만 저런 것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또 짧다고 느껴지는 남자들이 있다면 좀 잘라서 팔아도 손해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까지 했죠. 전 뭐 그렇게 밤에 잠 못자는 적도 많고 그냥 음악만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순간들도 무지하게 많이 가져봤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에 미친 듯이 외롭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어릴때, 그러니까 학교 다닐때는 늘 과제하느라 밤에 그렇게 일찍 자 본 적이 없었고, 회사 다니고 나서 부터는 그런 시간을 좀 가져보려고 해도 언제나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자야만 했어요, 아니, 침대에 누워야만 했어요(침대에 눕는 것=잠을 자는 것이 더 이상 저에겐 아니니까…). 그러니 밤을 많이 가질 수 없는 요즘은 늘 뭔가 조금씩 잃어가는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짧은 밤이나마 밤답게 쓰지 못하는 저니까, 시간당 잘라서 저 위의 아저씨처럼 필요하신 분들께 적절한 가격에 팔았으면 좋겠다구요. 아저씨들, 아마 말로는 외롭다 외롭다 해도 그 밤이 그렇게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을테니까요.
# by bluexmas | 2007/12/24 01:46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