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링크의 본거지
에서 오늘 밤을 지내기로 했어요. 오랜 해외 생활 끝에 기댈 언덕이 너무나 많이 줄었거든요. 옛날 저의 기억 속 세계에는 참으로 많고 많은 언덕들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길도 뚫어야 하고 또 건물도 지어야 하고…해서 언덕들을 깎아 버려야만 했죠. 그렇게 무리한 개발을 하다보니 이제는 그냥 휑한 벌판만 남았더라구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한밤 중에 걷다보면 아주 오래전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밀어버려야만 했던 숲의 나무들이 우는 소리가 축축하게 들려오곤 하죠. 이제는 애써 귀를 막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언젠가 누가 불렀던 노래가사처럼 ‘아무리 애를 쓰고 막으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서요.
여기까지만 쓰면 블로그에 올릴 글로서 함량 미달인 것 같아서 그냥 덧붙이는 오늘의 경험담 몇 가지, 아니 사실은 한 가지.
예전에 블로그에 쓴 적이 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단지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공통적으로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알게 된 어떤 분과 처음 대면을 하고 밥을 먹었어요. 점심으로 일본식 ‘분자요리 molecular gastronomy(우리나라에서는 molecule gastronomy라고 나오는 것 같던데, 이게 문법에 맞나요? 하여간… 여기에 대해서는 기약이 없지만 나중에 글을 쓰기로 하죠…)’를 한다는 집엘 갔는데, 점심에는 분자요리를 안 하시더군요. 하여간 프랑스에서 처음 나온 분자요리를 일본식 스타일로 보인다는 집의 이름은 한자의 중국식 발음이고 또 먹은 건 그냥 평범한 스시였지요. 그러나 뭐 맛은 괜찮았으니까. 그리고는 커피를 마시러 그 옆 건물의 에스프레소 바라는데에 갔죠. 스타일리시하게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의 2층인가에 자리잡은 집인데 이탈리아어로 된 이름에 멋진 인테리어에… 해서 그 분과 함께 더블샷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그 에스프레소의 쨍한 쓴 맛이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나중에 물어봤더니 커피를 뽑을 때 끝에서 조금 빨리 잘라서 그럴거라고… 해서 자르지 않은 걸로 한 잔 더 마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더니 그제서야 주시는 에스프레소가 원하는 맛이었다고…
아뇨, 그렇다고 제가 무슨 커피 맛을 엄청나게 잘 아는 입맛 까다로운 커피 매니아는 아닌걸요. 저는 돈이 아까워서 이틀에 한 잔씩만 커피를 사마시는 시골총각인데, 그냥 원래 알던 에스프레소에서 쓴 맛이 빠져서 궁금했을 뿐이에요. 오히려 일하시던 분들께서 제가 무슨 그런 사람인줄 알고 쳐다들 보시는데 어찌나 무안하던지요.
하여간, 그런 얘기를 하면서 일하시는 여자분한테 ‘쓴 맛이 좀 적은게 아닐까요?’ 라고 물어봤더니 그 분께서 정색을 하시면서 ‘저는 써서 못 마시는데요’ 라고 말씀하셔서…
뭐 그냥 그렇다구요. 포스팅의 양을 늘리기 위해 쓴 얘기라서 좀 두서가 없네요.
(그건 그렇고 이 얼마 안 남은 기댈 언덕의 주인장께서 제 블로그를 링크해 놓으셨다니 나름 충격이군요. 전 그 분 블로그 링크 안 해놨는데…)
# by bluexmas | 2007/12/20 20:37 | Life | 트랙백 | 덧글(6)
친구가 슈밍화 간 얘길 스펙터클하게 해주어서요… ;
재인: 약간 아스트랄할까요? 글을 올리고는 싶은데 저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좀 그러네요.
소냐님: 제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커피 한 컵을 마시기에는 배가 너무 불러서, 랍니다… 매니아와는 거리가 좀 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