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회의 아픔/붕어 싸만코
왜, 살아 있는 고기를 회 쳐주는 집에 가면 고른 녀석을 잡아서는 살은 회로 내오고, 머리와 뼈는 매운탕을 끓여서 어디 하나 버릴데 없이 알뜰하게 손님을 대접하잖아요. 아, 물론 아주 가끔은 신선도를 강조하기 위해 머리와 뼈를 접시에 장식으로 담고 거기에 뜬 회를 가지런히 담아 내오기도 하죠. 그럴때 가장 마음 아픈 경우는 고기가 낮은 지능 때문에 지가 죽은지도 모른채 눈을 열심히 꿈뻑거리는 상황… 그러나 그럴때는 너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고 깻잎을 집어 사후세계에서의 행복을 빌어주며 고기의 눈을 살짝 덮어주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거에요. 상칫이파리는 너무 크구요, 마늘은 너무 작으니까 깻잎이 딱 적당하다는 점만 염두에 두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회는 맛있게 드시면 되는거죠. 뭐 고기가 싸가지없게 꿈뻑거린다고 풋고추로 눈을 찔러서 불쌍한 고기를 두 번 죽이는 만행만 저지르지 않으시면 돼요.
각설하고, 이 얘기를 왜 하나면 제가 선택하지 않은 저녁자리에서 대구탕을 시켰는데, 거기에 든 대구가 딱 그 회 치고 남은 고기의 부분만을 넣은 분위기였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언제 대구 회도 시켰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저는 회를 안 먹는 사람인데다가 대구는 회로 먹는 생선이 아니라는게 문제였죠. 알고 보면 대구가 그렇게 비싼 생선도 아닌데 그 집은 대체 대구 살은 어디에다가 쓰고 뼈로만 탕을 끓이는 것인지… 그나마 국물맛은 시원한 대구맛도 아닌 텁텁한 미원맛이더군요. 점심은 맛있었는데 참 저녁은…
그래서 먹다가 먹을게 없어서 밥도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 가게에서 붕어 싸만코를 사왔어요. 낮에 분당에서 강남으로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데, 어떤 커플이 먹고 있는 걸 보고 생각이 났거든요. 십 수년 전 고등학교 시절, 돌이켜보면 붕어 싸만코는 언제나 베스트셀러였어요. 언제나 애들이 ‘아저씨 붕어 주세요’ 라며 줄을 서면, 매점 아저씨는 꼭 서너 개 팔고는 ‘이제 다 잡아가서 없어~’ 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하여간 그런 붕어 싸만코를 잡아서 집에 돌아왔죠. 진짜 물고기를 저녁에 먹고 생긴 아쉬움을 가짜 물고기로라도 좀 달래보려구요. 아, 이제는 ‘참’ 붕어 싸만코라 불리는 이 녀석들은 왜 ‘참’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맛만은 예전 그대로더군요.
참, 대구탕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 건데, 군대에도 대구탕 메뉴가 있거든요. 그럼 늘 냉동 대구가 나오곤 했는데, 얘들은 꼭 사람 때리기 딱 좋은 크기에 아주 딱딱하게 얼어서 아주 가끔은 본래의 취지와 약간 다른 용도로 쓰이곤 했죠(그 용도가 무엇인가는 군 기밀이라 밝힐 수 없는게 많이 아쉽네요). 제가 군에 있었던 시절이 1996년-98년 이었는데, 바닷바람에 실려 왔던 소문에 의하면, 그 대구가 러시아 근처 바다에서 잡힌 건데 사실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잡아 얼린 녀석들이었다더라구요. 그러니까 적어도 8년의 세월을 춥고 추운 냉동창고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소비 및 채혈 대상 집단(추정 약 60만 명)에게 소비되기 위해 기다렸던 것이죠. 그리하여 그렇게 본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기나긴 추위의 시절을 참고 버틴 대구들에게 취사병들은 고추가루로 경의를 표하고 콩나물을 염을 해 대구탕을 끓였고 나머지 장병들은 그 대구의 희생과 취사병들이 거기에 보내는 존경의 의미도 되새겨보지 않은 채 국물만 두어 숟갈 떠 먹은 후 모조리 짬밥통에 쳐 넣곤 했죠. 넓고 넒은 바다를 누비며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던 대구들은 그렇게 잡힌 의미도 찾지 못한 채 좁은 짬밥통에 다시 옹기종기 모여 결국 돼지 밥이 되었다는 뭐 그런 고루한 얘기네요.
# by bluexmas | 2007/12/15 23:24 | Taste | 트랙백 | 덧글(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