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Je T’iame (2006)-파리라는 도시에 관한 영상엽서 모음집
연휴 동안에 볼 다른 영화를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낼름 집어온 영화 Paris Je T’aime는 사실 개봉 당시부터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습니다. 결국 약간의 게으름과 아틀란타의 문화 저변의 부족으로 이제서야 보게 되었지만,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비교적 오랜 기다림이 그렇게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저는 이 영화가 스티브 부세미 주연의 인디 영화 정도일거라고 생각했을만큼 영화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사실 영화를 보려던 이유도 ‘스티브 부세미가 나오니까 봐야 되겠군’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 영화가 단편을, 그것도 파리의 몇몇 장소들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짧은 영화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또 본인의 영화에 대한 무지함을 재인식하는데에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죠-_-;;;). 좀 더 영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찾아본 위키피디아의 영화 관련 페이지에서는 원래 파리의 20 구역들 arrondissenemnt을 배경으로 20편의 짧은 단편들을 엮을 계획이었으나 두 편이 예상대로 제작되지 못하고 빠져서 전부 열 여덟편이 담겨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른 감독들과 다른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열 여덟편의 단편들은, 마치 영화가 촬영된 각각의 장소 어딘가에서 앉아 그 장소가 주는 느낌만으로 30분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찍은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어떤 단편은 그 장소가 주는 느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또 어떤 단편은 장소가 주는 느낌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만든 것 같다는 느낌도 줍니다. 열 여덟편에 두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니 대부분의 단편들이 마치 뮤직비디오와 같은 느낌의 빠른 전개를 보여주지만, 몇몇 단편들은 그저 뮤직비디오처럼 겉멋에만 치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만을 주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전체를 따져볼 때 무척 재미있습니다. 몇몇 질이 떨어지는 단편들이 있기는 해도 지루할만하면 끝을 맺고 바로 다음 편으로 넘어가 전혀 다른 배우와 다른 줄거리를 보여주는 덕분에 조금은 못마땅한 구석이 있다고 해도 바로 잊고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연기와 이야기, 그리고 장소에 개인이 가지고 있는 파리의 기억까지 대입시켜 즐길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저는 파리에서 살아 본 적도 없고 두 번의 다른 여행속에서 25일 정도 머물렀던 것이 전부였지만 관광객들이 가지 않는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그 여행의 기억을 깊은 곳에서 끄집어 내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저에게 파리라는 도시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등등 보다는 찾을 수 없는 공중화장실과 뒷골목의 개똥, 맛없는 싸구려 중국음식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러한 저마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곧 파리 한 번 다시 가봐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 by bluexmas | 2007/11/24 13:46 | Movi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