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 오는 소리

이러저러한 이유(뭐 혹시라도 궁금해하실까봐 좀 더 말하자면 축하받을 일 같은 것 때문은 아니랍니다~)로 같이 일하는 두 선배들에게 저녁을 사고, 회사로 돌아가야 된다는 선배는 다시 회사로, 또 지하철 역으로 간다는 선배는 역까지 태워다 드리고 열 시 조금 못 되어 집에 돌아 왔습니다. 약간 몽롱한 정신으로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 더워진 기온 탓에 활짝 열어 놓은 창문 밖으로 금요일이 살금살금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지난 주 금요일에 두어시간 일찍 퇴근해서 잔디를 좀 손보고 청소 및 정리를 했는데, 세상에 그 여파가 일주일을 가는 걸까요… 게다가 단 하루 열 두 시까지 일했을 뿐이었는데 한 주 내내 정말 피곤하더라구요. 거기에 날씨마저 맞장구를 친답시고 눅눅한데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몸이 참으로 물 흠뻑 먹은 솜처럼 무거워서 이번 주는 매일 점심 시간마다 점심 먹고 차에서 뻗어 자야만 했죠. 그것도 보통은 시계의 도움 없이도 제 시간에 일어나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오늘은 놀라서 일어나니 한 시 십 분 이었나…? 두 시 넘어서까지도 잠이 안 깨더라구요. 아, 거기에다가 지난 금요일에 안경알 한 짝을 잃어버려서 안경을 못 쓰고 일을 했더니 그것도 약간 답답했구요. 눈은 안 나쁘지만 컴퓨터를 너무 오래 보면 난시 때문에 눈이 시려서 일할때만 쓰는 안경인데, 역시 너무 싼 건 오래 못 가는 모양이에요. 항상 쓰는게 아니라 남대문에서 두 번째로 싼 걸로 맞췄는데 늘 빠지던 오른쪽 알이 결국은 아주 나가버린지도 모르고 한 30분을 더 쓰다가 알았다고…

뭐 이렇게 늘어놓다보니 한 주가 버거웠노라고 불평이라도 늘어놓는 것 같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금요일이 다가오니까 좋다는,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뭐 주말엔 영화나 한 편 보고 밥 해 먹고…

참, 생각난 김에 사족처럼 덧붙이는 얘기.

가끔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다가 본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할 때가 있었어요. 언제나 그림에 대한 얘기는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단 어느 미술관에서 언제 보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느 시대 누구의 그림이고 그때의 사조는 어떠했기 때문에 그림의 화풍은 이렇고 또 화가의 성격이며 개인사가 이러했기 때문에 그림이 한 편으로는 이런 느낌을 보이고 또 거기에 조금 더 세세히 덧붙이자면 액자는 또 어땠는데…

라고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약간 짜증난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것이냐고 따지곤 했어요. 대체 그림 하나를 얘기하는데 뭐 그리 멀고도 먼 길을 돌아와야 되느냐고. 몇 년도 어떤 화가의 그림인지만 얘기하면 대충 알아먹지 않겠냐고 얘기들을 했죠. 뭐 우리도 그 정도의 사전 지식은 있는데 무시하는거냐고… 뭐 사실 그것보다는 정보나 느낌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그렇게 길고 긴 얘기를 입 아프도록 한 것이었는데, 그럼 할 필요 없겠구만…이라는 결론에 도달, 요즘은 그나마 자주 꺼내지도 않는 그림 얘기를 거두절미해서 ‘누구의 어떤 그림을 보았는데’ 라고만 말했더니 다들 무슨 얘기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또 되묻더라구요.

그냥 그렇다구요. 뭐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를 한다거나, 이상하거나 혹은 별난 사람이라는 얘기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들어서 이제는 별 느낌이 없으니까.

비가 오네요.

 by bluexmas | 2007/10/05 13:38 | Life | 트랙백 | 덧글(9)

 Commented by 笑兒 at 2007/10/05 13:43 

저는 이제 롱위켄드에요~

(Canadian thanksgiving은; 돌아오는 월요일이랍니다.)

금요일날 학교 클래스들도 off되어서 //ㅅ//

(그저; 마냥 신났습니다..;; )

 Commented by 쏘리 at 2007/10/05 13:49 

전 작업실에서 자유롭게 작업을 하는지라 사실 요일은 별로 상관없지만…

주변분들이 금요일만 기다리는걸 보면 저도 같이 기분이 들뜨더라구요.ㅎㅎ

 Commented by basic at 2007/10/05 15:35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을 때는 저에게 하세요. 🙂 학교에서 비싼 돈 내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거니까. (물론 언제나 졸고 있긴 하지만요.) 휴일에 맛있는 거 해 드시면 피로가 싸악 풀릴 거에요. 언제나 음식으로 해결!

 Commented by blackout at 2007/10/05 23:00 

저는 제 말 알아듣는 사람하고만 놀거든요…^^ 제가 영화같은것에 대해서 기억력이 좋아서, 영화 한편 친구한테 이야기 해주려면 거의 2시간 넘게 걸린답니다. 기억나는 대사에, 표정까지 뭐 혼자서 영화 다시 찍어요…ㅋㅋ. 그래서 그런거 들어주는 사람 하고만 놀거나, 잘 들어주게 만들거나,

 Commented by Josée at 2007/10/06 02:00 

저도 미술 얘기 듣는 거 좋아할텐데; 전 책 얘기랑 영화 얘기하는 것 좋아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주파수가 맞지 않는 사람과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난감해 해요.

어떤 사람들은 피상적이고 아무 내용도 없는 말을 능숙하게 잘하던데 말이죠

아주 드물지만, 공감 영역에 도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ㅠ<

 Commented by 소냐 at 2007/10/06 11:36 

책이나 영화 혹은 실제 에피소드 얘기를 할 때 제 친구들은 가끔 그럽니다. 넌 왜 그렇게 디테일에 집착하는 거야!! 디테일이 모여서 결국은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건데.. ㅜㅜ

뭐 제가 요약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면도 없진 않습니다만..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0/07 09:08 

笑兒님: 그렇군요…긴 주말 저도 필요한데…

쏘리님: 작업실이라니, 무슨 일을 하시는지 궁금한데요?

basic님: 맛난거 해 먹는게 은근히 피곤하답니다.

blackout님: 재미있겠네요^^

Josée: 결국 물음은 타인의 삶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는 것이겠죠.

소냐님: 공부하는 사람은 요약하는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저에게는 있어서요…히히…

 Commented at 2007/10/08 09: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10/08 11:08 

네… 오래 컴퓨터를 들여다보면 눈이 시려서 요즘은 안경을 쓰는게 더 편하더라구요. 그래야 일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비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는 것 같아요.